홍 사모의 ‘교회 장애교육’(27) 2023년을 맞이하며
홍경아 사모(미주)
아리조나한인교회, 현 공립초등학교 특수교사
2023년을 맞이하며
새해가 밝았다. 여러 가지 사건들과 아픔이 많았던 2022년을 뒤로 하고 하나님께서는 어김없이 늘 한결같이 우리에게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하셨다. 그동안 많은 일들이 있었고 코로나로 소중한 생명들, 목회자들, 가족들이 하나님 품으로 떠났다. 어둡고 슬픈 일들이 많았다. 생각보다 코로나의 영향은 학교와 교회, 그리고 우리의 삶 속에 깊숙하고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 글을 읽고 있는 필자를 포함한 독자들에게 새날을 허락하신 데에는 분명한 뜻과 사명이 있을 것이다. 필자는 그 뜻과 사명 중의 하나가 바로 코로나가 덮어씌운 어둠의 장막을 젖히고 복음의 빛과 소망을 전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요즘 필자는 “In a Different Key”라는 책을 읽고 있는 중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에 관련된 책이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의 역사와 어떤 노력과 눈물을 통해 자폐증이라는 장애가 음지에서 양지로 대중에게 나오게 되었는지를 사례 위주로 다루고 있는 책이다. 이 책을 읽게 된 계기는 며칠 전 TV에서 우연히 이 책의 저자들이 만든 다큐멘터리와 책을 소개하는 인터뷰를 보게 되면서이다. 인터뷰 중에 소개한 다큐멘터리 영상에서 최초로 자폐증 진단을 받은 사람이 나왔다. 그의 이름은 Donald Triplett로 현재 앨라배마의 포레스트(Forest)란 마을에 살고 있다고 한다. 89세인 그는 마을에서 유명인사이며 마을 사람들의 관심과 사랑 속에 독립적인 일상생활을 해나가고 있다. 학령기나 20, 30대의 자폐증을 지닌 사람들은 많이 보았지만,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든 이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TV 속에서 조차도 말이다.
Donald는 자폐증이라는 단어 자체가 없었던 1930년대에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Donald의 부모님은 당시 장애를 지닌 자녀를 시설에 보내는 것이 일반적이었던 사회적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다양한 교육 방법을 시도하며 백방으로 Donald의 범상치 않은 행동과 증상들을 해석하고 이해시켜 줄 사람이나 곳을 찾았다. 그때 만난 의사가 당시 소아 정신과 분야에서 유명했던 존 홉킨스 대학의 Leo Kanner라는 의사이다. Donald도 초등학생이 되기 전 잠시 집을 떠나 어린이 요양원 같은 시설에 머무른 적이 있었지만, 이것은 옳은 방법이 아니라는 부모님의 깨달음으로 집에 돌아와 초등학교 3~4학년까지 동네 아이들과 함께 일반 초등학교를 다니고 그 이후에는 집에서 가까운 숲속 오두막에 마음씨 좋은 농부 부부와 고등학교에 다니기 전까지 살았다고 한다. 그 이후에는 집으로 돌아와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고등학교를 무사히 다니며 졸업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에야 장애를 지닌 학생들이 일반 초등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지만 Donald가 살던 시기에는 이것이야 말로 정말 혁신적인 것이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Donald 할아버지가 운영하는 은행에 매일 출근하여 간단한 일을 했다고 한다. Donald가 이렇게 마을의 한 구성원으로 비교적 독립적인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은 물론 부모님의 헌신적인 노력과 노력을 효과적이게 하는 재력이 뒷받침이 되었을 것이다. Donald네 할아버지는 마을에 하나밖에 없는 은행의 주인이었고, 아버지는 변호사, 어머니는 사교계의 유명인사였다고 한다. 이러한 점이 Donald가 마을에서 안전하게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음은 말할 것도 없겠지만, 그것만이 Donald의 평안한 삶을 다 설명해 주지는 않는다. 무엇보다 부모님이 Donald의 장애를 숨기거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Donald가 자립적이고 독립적인 한 사람으로 살 수 있도록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점, 그리고 그러한 태도가 마을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럽게 전달되어 Donald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 주었다는 것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의 저자들이 살아있는 자폐증 역사인 Donald를 인터뷰하기 위해 마을에 갔을 때, 마을 사람들이 이들에게 Donald와 인터뷰하는 것은 막지는 않겠지만 Donald에게 뭔 일이 생겼다가는 알아서 하라는 식의 경고를 날렸다고 한다. Donald가 자폐증을 지녔다는 것을 모르는 주민들도 있었다고 한다. 마을 사람들에게 Donald는 자폐증을 지닌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할아버지 Donlad였던 것이다. 이 인터뷰를 보면서 우리들이 다니는 교회 공동체가 그 마을처럼 되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장애가 삶에 불편함을 주지만 그것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며, 숨기고 음지로 숨어드는 것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이 서로 돌아가며 Donald와 친구가 되어주고, 때때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그를 위해 목소리를 높여 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2023년에는 교회에서 예배 후에는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 어디로 야유회를 갈까, 애들은 어느 학원에 보낼까를 넘어서는 높고 숭고한 좀 더 의미 있는 것들을 품으며 나아가는 일들이 벌어지길 소망한다. 크리스천으로서 우리들의 부르심이 무엇인지 순간순간 확인하는 한 해가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