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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신약 성경과 요세푸스의 역사 자료

<span style=" font: bold 0.7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신약 성경과 요세푸스의 역사 자료</span>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대표)

신약 성경과 요세푸스의 역사 자료

신약 성경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 신약 성경 배경사를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역사의 산물(?)입니다. 성경은 역사의 한 지점에서 기록되었습니다. 아울러 성경은 역사적 사실을 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로마와 유대 역사가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 만났던 사람들, 예수님께서 경험한 사건들이 역사적 사실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탄생하기 직전부터 초대교회가 태동하던 시기에 유대 사회는 격랑의 물결을 거칩니다. 로마를 포함한 강대국들의 지배를 받는 변방의 유대 사회를 기록으로 남긴 사람들이 많지 않습니다. 2세기 초의 타키투스(Tacitus)와 수토니우스(Suetonius)가 아주 간략한 언급을 남겼고, 탈무드에서 예수님에 관한 짧은 기록을 남길 뿐입니다.

이런 점에서 역사가 요세푸스의 역사책들은 아주 소중한 자료입니다. 요세푸스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부활 그리고 승천하신 지 수년 후 그리고 사울이 기독교로 개종한 지 얼마 안 된 A.D 37년에 출생하였습니다. 정통 유대인으로 태어난 요세푸스는 예루살렘에서 성장하였습니다.

그는 유대교와 성전, 로마 총독들과 로마 황제들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하며 성장하였습니다. 특히 성경에 등장하는 헤롯 가문의 왕들과 유대 지도자들 즉, 대제사장, 산헤드린 그리고 바리새파, 사두개파 사람들을 직접 목격하고 그들에 대한 기록을 남겼습니다. 심지어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에도 잠시 살았던 요세푸스는 갈릴리 지역과 환경에 대해서도 상세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요세푸스는 특유의 관찰력과 학구열을 가진 역사가였습니다.

요세푸스는 마타티아스의 아들입니다. 아버지의 혈통은 제사장 가문입니다. 어머니 쪽은 헤롯이 정권을 잡기 전에 막강한 권력을 휘두른 하스모니안 왕가 혈통이었습니다. 요세푸스는 ‘요셉’의 헬라적 표기였습니다. 좋은 가문에 태어난 그는 역사적 격변기에 다양한 이름으로 살아갑니다. 그는 학생, 종교 그룹의 일원, 정치가, 장군, 배신자, 역사가 그리고 유대인 변증가로 불렸고, 오늘까지 그런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들이 현재까지 남아 있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로마 황실의 후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의 이름이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라고 전해지는데 여기서 플라비우스는 요세푸스를 후원했던 로마 황제들의 가족 이름입니다. 요세푸스는 이런 자신의 힘을 통해 유대인과 유대 사회를 지키려는 나름의 역할을 합니다.

요세푸스는 자신이 기술한 ‘생애’라는 책을 통해서 자기 인생을 소개합니다. 자료에 의하면 요세푸스는 조숙한 젊은이였습니다. 14세에 이미 랍비들이 그에게 자문을 요구할 정도로 그의 학문의 깊이는 인정받았습니다. 12세의 예수님께서 성전에서 서기관들과 묻고 답했던 것을 연상케 합니다. 열심 있는 유대교 신자인 그는 바리새인이 됩니다. 아울러 요세푸스는 광야의 은둔자 바누스(Bannus)와 함께 고행자로 사막에 머물며 수행을 하기도 합니다.

요세푸스는 유대 전쟁이 발발하기 전인 64년에 로마를 방문합니다. 이유는 당시 유대 총독 벨릭스(Felix)가 제사장들을 네로 황제 재판에 보냈습니다. 요세푸스는 그 제사장들을 석방하기 위해 로마로 갔습니다. 그는 네로의 아내 폽페아(Poppea)의 도움으로 제사장들을 석방을 얻어 낼 수 있었습니다. 네로의 아내 폽페아는 개종한 유대인이었고, 열심을 가진 유대교 신자였습니다. 요세푸스는 폽페아와 개인적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집니다.

유대로 귀국한 요세푸스는 로마와 유대가 전쟁에 맞서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요세푸스는 무모한 전쟁을 막으려고 노력하다가 마지막에는 조국을 위해 싸우는 전쟁에 참전합니다. 29세의 요세푸스는 갈릴리 수비대 사령관으로 전쟁을 합니다. 결국, 요세푸스는 훗날 로마 황제가 된 베스파시안 장군에게 포로가 됩니다. 나중에 예루살렘이 포위를 당하고 공격당할 때 아이러니하게도 베스파시안 황제의 아들인 티토 장군의 통역자로 예루살렘의 함락을 목격합니다. 이 전쟁 후 티토와 함께 로마에 가서 연금과 함께 고급 주택을 제공받고,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집필활동을 하게 됩니다.

요세푸스는 네 권의 책을 남겼습니다. 먼저, ‘전쟁사’입니다. 그는 전쟁사에서 유대 전쟁을 기술하면서 예루살렘 성전과 유대의 역사, 생활, 관습 사상 등을 소개합니다. 요세푸스는 전쟁사 이후에 거의 20년 동안 저술 활동을 중단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공부하며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창조 이후부터 자신의 시대까지 이르는 유대 역사를 소개하는 ‘고대사’를 썼습니다. 그는 고대사를 위해 구약을 철저히 참고합니다.

셋째, 요세푸스는 자신의 삶을 다룬 ‘생애’라는 자서전을 남깁니다. 이 책에서 유대인이지만, 황실의 후원을 받는 로마 시민으로 살아가는 자신을 변명합니다. 요세푸스의 넷째 책은 ‘아피온에 반대하여’입니다. 자신을 후원했던 티토 황제가 죽은 후에 문법학자 에바브로디도(Epaphroditus)의 후원을 받습니다. 그는 에바브로디도에게 이 책을 헌정합니다. 에바브로디도는 당시 3만 권의 책을 소장한 개인 도서관을 가졌던 학자였습니다.

요세푸스의 작품들은 신약 성경을 이해하는데 중요한 자료입니다. 요세푸스가 남긴 기록들의 의미를 정리해 봅니다. 첫째 요세푸스 자료는 신약 성경의 역사성을 확증해 줍니다. 예수님, 침례 요한 그리고 초대교회 인물들을 언급하면서 역사를 기술해 가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삶, 십자가와 부활이 역사적 사건임을 요세푸스가 증언합니다.

둘째, 요세푸스의 기록들은 유대 사회 상황과 역사적 자료를 제공함으로 신약의 해석을 돕습니다. 예컨대 세리 삭개오가 왕따당할 수밖에 없었던 로마 속 유대 상황을 소개합니다. 셋째, 신약 성경이 신앙적 시각으로 기록된 문서라면 요세푸스의 자료는 정치 사회적 시각으로 기술된 문서입니다. 넷째, 요세푸스 자료는 복음서에 암시만 되어 있는 유대 전쟁의 발발, 예루살렘 멸망 그리고 성전 파괴 등에 관한 자료를 생생하게 전하며 성경이 침묵하는 장면을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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