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근 목사의 신앙 & 삶] “관찰력이 성공을 이끈다”
박성근 목사 – 남가주 새누리교회(미주)
“관찰력이 성공을 이끈다”
“똑같은 나무를 보아도 우둔한 사람과 현명한 사람은 보는 눈이 다르다.” 이것은 18세기 영국의 시인이면서 화가였던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사람이 한 말입니다. 우둔한 사람은 나무의 겉모양만 보고 “크다, 작다”만 말할 뿐이지만, 현명한 사람은 그 나무에 담겨있는 애환의 스토리를 읽어낸다는 것입니다. 자세하게 깊이 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처럼 주어진 사물을 자세히 보고, 그 내면의 실상을 잘 파악하는 힘을 우리가 ‘관찰력’이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인생의 성공자가 되려면 관찰력이 뛰어나야 합니다. 그래야 주어진 상황을 바르게 판단하고, 남들보다 한 발짝 앞서갈 수가 있습니다. 관찰력이 부족한 사람은 똑같은 것을 보고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잘 판단을 못 합니다.
어떤 책에 보니, 여자분들은 아기가 우는 울음소리를 듣고도 왜 우는지 그 이유를 일곱 가지나 분별해낸다고 합니다. 남자들은 어떨까요? 저를 비롯해서 대체로 둔합니다. 그래서 아기가 울면 무조건 우유병만 입에 넣어주는, 아기의 진짜 필요를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관찰력이 뛰어난 사람은 다릅니다.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집어내고 그것에 합당한 판단을 내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관찰력이라고 하는 것은 판단을 바르게 하고, 해야 할 일을 바르게 행하게 하는 중요한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지적으로 관찰하는 것만으로 인생의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인간이 가진 인지적인 관찰 능력은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즉, 눈에 보이는 피지컬한 현상만 보지, 그 내면을 들여다볼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관찰력입니다. 영적인 관찰력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어디로 움직이시는가, 영적인 현상을 보고 거기에 합당하게 판단을 내려서 행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영적 관찰력이 뛰어나야 인생의 진정한 문제를 바라볼 수 있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해서 참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길을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실제로 성경을 보시게 되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수행했던 사람에는 영적 관찰력이 뛰어났던 사람이 많았습니다. 예를 들어, 창세기를 보시면 아브라함이 마므레 상수리나무 아래에 있을 때에 저 멀리서 세 명의 나그네가 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중동지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행객입니다. 그때 아브라함이 장막에서 달려 나가서 그 앞에 몸을 굽히면서 “나의 주여, My Lord”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리고는 최상의 식사대접을 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일반 나그네와는 무엇인가 다르다는 것을 감지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관찰력이죠. 아니나 다를까 대접하고 봤더니 그들이 천사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한 분이 많은 성경주석가들에 의하면 성육신하시기 전의 주님이셨습니다. 그때 주님이 말씀하십니다. “내년 이맘때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아브라함 부부가 그토록 고대하던 축복에 대한 응답을 거기서 받게 된 것입니다. 바른 관찰력이 축복을 가져온 경우라고 하겠습니다. 열왕기상 18장에는 엘리야의 영적 관찰력에 관한 경우가 나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기도했을 때, 처음에는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번째 기도가 끝났을 때 저 멀리 지중해 위에 손바닥만 한 구름 한 조각이 나타났습니다. 아마 아무도 그 작은 구름의 의미를 알지 못했을 것 같은데 엘리야는 알았습니다. 그 작은 구름 한 조각이 삼 년 반의 기근을 끝내고 큰비를 몰고 온다는 사실을 인식했습니다. 그래서 엘리야는 아합에게 아직 비가 오지 않는데도 불구하고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십시오. 큰비가 올 것입니다’라고 얘기합니다. 이게 영적인 분별력입니다. 이와 같은 영적인 분별력이 있었기 때문에 그 어둡던 아합왕 시절에 바알 숭배에 끌려가지 않고, 거룩한 신앙을 지키는 것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이와 같은 영적 분별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악한 세대 가운데서 바른길을 선택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악하고 혼탁한 시대에 영적 관찰력이 없으면 어디로 끌려가는지 분별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6장에서 “너희가 천기(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 당시 종교지도자들 성경을 많이 안다는 사람들이 날씨는 분별하면서도 하나님의 움직임을 몰랐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선택을 하게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런 유사한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이 세상의 동향에는 굉장히 밝고 민감한데 하나님의 움직임에 대해서 무관심한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마음을 읽지 못하기 때문에 엉뚱한 곳에서 헤매는 경우가 많은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로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하나님 뜻을 온전히 이뤄드리기 원한다면, 영적 관찰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야지 영적 상황을 바르게 판단할 수가 있게 되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수행해드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무뎌진 우리의 영적 분별력을 새롭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하신 바를 이루어드리며 살 수 있으려면 크게 세 가지 즉 첫째, 문제의 실상을 관찰해야 하고 둘째는 사람의 내면을 관찰해야 하며 마지막으로는 하나님의 마음을 관찰해야 합니다.
여호수아서에는 가나안 전쟁을 시작하기 전에 정탐꾼을 보낸 이야기가 나옵니다. 여호수아는 두 명의 정탐꾼을 보내면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고 했습니다(1절). 여기서 “엿보라”는 말은 “주의 깊게 보라, 관찰하라”는 뜻입니다. 관찰을 잘해야 전쟁에 대한 준비를 바르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기생 라합의 집에 유숙했는데, 여리고왕이 이것을 먼저 알고 정탐꾼들을 체포하려 했습니다. 그때 라합이 이 두 사람을 숨겨 주었습니다. 여호와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언약, 능력, 주재권을 깊이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이 땅 주민들이 다 간담이 녹았다”고 했습니다(9절). 사실은 가나안 족속들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38년 전 이스라엘은 이 사실을 모르고 자신을 메뚜기 같다고 하며 하나님의 뜻을 간과하여 가나안으로 직행하지 못하고, 긴 세월을 방황하며 보낸 것입니다.
문제의 실상, 사람의 내면,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영적 관찰력이 부족했던 탓입니다. 영적 시각이 분명하지 못하면 이런 우를 범할 수 있습니다. 영적 관찰력을 높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샬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