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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회단상 牧會斷想]
1년 반 만에 선 강단에서

<span style=" font: bold 0.8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목회단상 牧會斷想]</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1년 반 만에 선 강단에서</span>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1년 반 만에 선 강단에서

21년 동안 서던 강단에 1년 반 만에 섰다. 어색하게 귀고리 마이크를 차고 선 내 앞의 보면대를 보며 만족한 웃음을 웃는다.

오래전 성지 순례를 하며 교회 건물들이 미신의 집처럼 전락한 흉물로 관광거리가 된 것을 보며 아픔을 느꼈다.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위엄스럽고 거룩한 자태를 지닌 성전의 권위 아래서 화려하게 수놓은 옷으로 권위를 덧입은 성직자들이 온갖 혜택을 누리며 교회를 타락하고 쇠하게 한 역사가 그려지면서….

아픈 기독교 역사를 되새기다 내 모습이 보인다. 성스럽고 위엄 있는 검은색 목사 가운에, 수많은 책을 고급스러운 책장에 쌓아 사무실에 장식해 놓고, 옆구리에 성경책을 우아하게 끼고, 주석에서 인용한 원어를 필요 이상으로 설교에 사용하며, 높고 큰 강대상 앞에서 인위적인 권위의 덕을 보려는 속내를 들켜 부끄럼이 일면서……

여행을 마치고 교회로 돌아온 난 예배시간에 입던 가운을 벗고 사무실에 있는 책 모두를 교회 도서관으로 옮겨 버렸다. 그리고 강대상을 작게 만들었는데 그 자리에 대신 더 초라해진 보면대가 놓여 있다. 이를 보며 후임자를 향한 신뢰가 커진다.

권위는 인위적인 것, 문화와 전통에서 온 것 그리고 하나님이 내리시는 것으로 서로 뿌리와 열매가 다르지만, 삶에 뒤엉켜 있다. 이를 분별하여 때로는 버리고 때로는 사용하며 아름다운 인격과 지혜로운 삶으로 인도받는 것이 신앙인의 영성이 아닐까? 그러나 이를 행하는 것이 그리 쉽지를 않다. 하나님이 내리시는 권위는 껍질을 벗고 낮아진 속 사람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손해를 감수하고 부끄러움을 드러내며 희생하여 봉사하는 데서 오는 데 비하여 인위적인 권위는 거짓과 이기심으로 태어났는데도 그 열매가 달콤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리고 문화와 전통에서 온 권위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병들어 있는데도 삶을 편리하게 하기 때문에….

그러나 이 영적인 싸움을 이기고 행하면 시간이 갈수록 속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데서 오는 능력과 그들과 공감하는 즐거움을 누린다. 그리고 영적인 귀와 눈이 열려 자연과 말씀 그리고 이웃과 양심과 진리를 바르게 보고 들으며 단순하고 쉬운 삶을 살며 하나님이 내리시는 지혜의 능력을 맛본다. 이에 따라 저절로 아름다운 인격으로 봉사의 삶을 살며 존재 가치를 맛보게 된다. 이런 가운데 저절로 주어지는 하나님이 내리시는 권위를 가진 사람들은 평등함 가운데서 오는 하나 되는 기쁨, 상처를 치료하는 능력 그리고 죄지은 사람들을 돌이켜 하나님 앞으로 돌아오게 하는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이 내리신 권위가 전통과 문화의 옷을 입고 병들게 되기 일쑤다. 크고 화려해진 교회와 일반 사람들과 분별되는 성직자의 직위와 옷, 진리를 목말라하는 겸손한 마음이 쌓인 책을 만들고 이들을 남용하게 되면서…. 여기에 다양한 직분과 학벌과 경력, 화려하고 크게 만들어진 강대상이 하나님이 내리시는 권위가 실종되는 것을 돕는다.

이렇게 하나님이 내리시는 권위가 추락한 줄도 모르고 가르치려 하고, 지적질하며 세상을 고치려 하니 그 소리가 오히려 소음처럼 느껴지는 시대에 우리가 사는 것은 아닐까? 나를 둘러싼 전통과 문화 안에 녹아 있는 오염된 권위를 버리고 새롭게 주시는 하나님의 권위를 크게 해야 할 때이다. 어린아이처럼 맑고 순수하고 겸손한 영혼이 되어 회개하고 낮은 자리에서 나를 둘러싼 전통과 문화와 시대를 보며 치열한 영적인 싸움을 싸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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