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elect Page

“위대한 승리자 이상래 목사님, 천국 남대문 앞에서 만나요”

“위대한 승리자 이상래 목사님, 천국 남대문 앞에서 만나요”

목사님 때문에 행복했어요… 은혜와 눈물, 재회의 기대 속에 이별


故 이상래 목사

지난 2019년 10월 무렵 신장에서 암이 발견됐다는 기도제목이 있은 후 갑자기 우리의 곁을 떠난 동역자 故 이상래 목사(58)의 천국환송예배가 지난 8월 27일 오전 9시 30분(PST)에 이상래 목사의 목회 생애가 녹아있는 미라클랜드침례교회에서 교회장으로 드려졌다. 장지로 이동해 드려진 하관예배는 오후 12시(PST)에 있었다. 이날 천국환송예배는 코로나바이러스의 영향으로 예배당에서 50명이 모였으나 잔디밭에서 텐트를 치고 TV로 송출되는 영상을 통해 150여 명이 함께 예배를 드렸다.

남가주지방회장 박영호 목사(예닮)의 사회로 진행된 예배는 예배의 부름, ‘내 영혼 평안해’ 찬송, 강유신 안수집사의 기도로 이어졌다. 강 안수집사는 위로와 삶으로 보여준 그 뜨거운 열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삶을 기억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계속해서 성경봉독이 있은 후 “위대한 승리”(딤후 4:6~8)의 제목으로 남가주새누리교회 박성근 목사가 말씀을 전했다.

박성근 목사는 말씀을 통해 “이 시간 우리의 마음에는 두 가지 종류의 마음이 있다. 하나는 슬픈 마음이다. 사랑하는 분이 우리 곁을 떠났기 때문이다. 그것도 너무나 일찍 떠났기 때문이다. 이상래 목사님은 우리 모두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분이다. 이 교회 성도님들은 말할 필요할 필요도 없고, 그분이 가진 순수한 믿음과 열정을 보았기 때문에 우리 목회자들도 사랑하고 존경했다. 그분의 삶은 군더더기가 없었다. 하나님과 성도를 향한 사랑이 언제나 진실했고, 교단을 사랑하고 목회자를 섬기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사모님과 가족들의 마음은 더 아플 것이다. 함께 동거 동락하며 가정과 목회를 세워가며 평생 동지로 살아왔는데 이 땅에서 더 뵐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한 아픔이요 받아들이기 힘든 현실일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또 한 가지의 마음이 있는데 그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 이것이 마지막 이별이 아니기 때문이다. 크리스천은 죽음이라는 관문을 통해서 더 완전하고 아름다운 우리의 본향 천국으로 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가 여기에 모인 이유는 단순히 슬퍼하고 통곡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우리 목사님의 생애와 천국 입성을 축하하며 이토록 귀한 분을 주신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영광돌리기 위해 모였다. 이 목사님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부터 일평생 복음을 위해 달려온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였다. 잘 싸웠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승리했으므로 승리를 축하하고, 찬양해야 하나님께 기쁨이 될 것이다”라며 고인에 대한 회고와 함께 예배의 의미를 설명했다.

계속해서 박성근 목사는 “오늘 본문에는 죽음 앞에서 당당한 승리를 선포한 또 한 분의 위대한 인물이 소개돼 있다. 사도바울이었다. 복음을 위해 살았고, 죽음을 앞두고도 두려움이 없으며 오히려 당당하게 승리를 선포하고 있다. 무엇이 이처럼 바울을 당당하게 만들었을까? 우리도 언젠가 이 땅을 떠나야 하는데 죽음 앞에 당당하게 승리를 선포하고 떠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 첫째, 바울은 목적지를 분명히 했다. 목적지가 분명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도 당당했다. 6절에 제사, 항해에 대한 비유가 나온다. 순교의 죽음을 표현하는 관제, 항해의 목적지는 천국이다. 이상래 목사님의 가슴에도 이 본향이 분명했다. 이 땅의 삶에 연연하지 않고, 일평생 복음을 위해 달려간 것은 영원한 천국 소망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이 소망이 분명할 때 주어진 사명을 잘 감당하고, 승리하며 살아갈 수 있다. 둘째는 삶의 과제가 분명했기 때문이다. 왜 살아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죽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7절을 보면 바울은 싸웠다고 말한다. 악한 자들과 역경과 복음의 대적들과 싸웠다. 그것 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지만, 성경 어디에도 바울이 후회하거나 원망한 흔적을 찾아볼 수 없다. 그는 세 번이나 선교여행을 다녀왔고, 온 아시아와 유럽을 선교하고 예루살렘을 거쳐 로마에, 그리고 땅끝인 서바나까지 달려갔던 쉬지 않는 바울의 여정을 볼 수가 있다. 이상래 목사님도 복음과 진리의 사수자였다. 누구보다 복음 때문에 살았고, 복음 때문에 죽었다. 질병이 공격해 왔을 때도 흐트러지지 않고 웃으며 아픔을 수용했다. 당당했고, 밝았고 참된 승리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은 목사님의 그 모습을 잊지 않으시기 바라고, 믿음의 유산을 잘 이어받아 못다 한 복음의 사명을 잘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 바란다. 세 번째, 소망의 실체를 분명히 할 때 우리는 당당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다. 8절을 보면 바울이 정말 사모한 것이 면류관인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주의 나타나심,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것 자체가 최고의 소망이었다. 사실 바울은 이 땅에서 오래 사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이 목사님은 우리가 늘 부르는 ‘예수를 생각만해도 내 맘이 좋거든 그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이 찬양을 부르며 기뻐하고 있을 것이다. 그뿐 아니라 면류관이라는 상급도 있다. 이 땅에서 주님 때문에 흘린 눈물과 아픔을 반드시 갚아주실 것이다. “잘했다. 충성된 종아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선포하시고 주님과 만찬을 나누며 천군 천사와 더불어 아름다운 시간을 갖고 있을 것이다. 막상 슬퍼한 것은 우리이지, 목사님은 주님과 앞서간 성도들과 만나 교제하면서 복락과 축복을 누리고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목사님을 잃어버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엄격한 의미에서 죽은 것도 아니다. 지금 천국에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있기 때문이다. 2018년에 빌리 그래함 목사님이 세상을 떠나셨다. 그때 그의 아들 프랭클린 그래함과의 인터뷰가 방송됐다. 앵커는 애도를 표한 후 마음이 어땠냐고 물었다. 그러자 아들은 사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달라스에 있었고, 뉴스를 보고 알게 됐다고 한다. 뉴스를 본 순간, 그는 그냥 잔잔하게 미소를 띠었다고 했다. 평소에 그가 아들에게 했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언젠가 빌리 그래함이 죽었다고 하거든 1초도 믿지 말아라. 나는 그 어느 때보다도 예수 그리스도 앞에 생생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라고 했다는 것이다. 잠깐의 이별은 가능하지만 영원한 이별이 아니다. 영결식이 아니다.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마음에 슬픔 가운데 잠겨서 시간을 보내는 것보다는 그분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분의 생애 자체를 축하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를 바란다. 우리 모두 언젠가 이 땅을 떠날 것이다. 그 귀한 아빠, 목사님을 만났을 때 부끄럽지 않도록 우리가 있는 곳에서 복음을 견고하게 지키고 천국의 소망을 선포하면서 다시 만날 때 환하고 밝게 만나기를 바란다. 그래서 귀한 사모님, 자녀들 힘들지만 힘내시고 감사하며 당당하게 믿음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말씀을 전하고 기도했다.

계속해서 지방회총무 민승배 목사(조은)의 양력 보고와 미라클랜드침례교회 안수집사회의 특송이 있었고, 딸 이하은 양과 아들 이하영 형제, 박찬관 집사의 현장 조사와 한국의 박창환 목사(꿈꾸는), 전 국제가정사역원장 최영기 목사의 조사가 영상으로 이어졌다.

이하은 양은 “제가 사랑하고 존경하는 아버지의 삶을 기억하기 위해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아버지께서는 예수님과 여러분을 넓으신 마음으로 사랑하셨습니다. 아버지는 평생 훌륭한 일을 많이 하셨지만, 제게는 평상시에 작은 순간들이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버지께 암이라는 무서운 병을 주셨을 때 저희는 무척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평상시처럼 사시면서 힘드셨을 텐데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용서해주셔서 감사하다. 나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덕분에 내 영혼은 평안하다. 아버지는 이 땅에 계시지 않지만, 여기 계시더라도 제가 드릴 말씀은 ‘아빠, 그동안 많이 행복했어요. 고마워요. 우리 천국에서 예수님 앞에 또 만나요. 사랑해요’”라고 마음을 전했다.

이어서 이하영 형제는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교훈은 첫째 ‘Show up’ 그는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서 빠진 적이 없었다. 우리는 은혜의 자리에서 항상 그를 볼 수 있었다. 둘째, ‘Pray first’ 아버지는 기도의 능력을 믿었으며 항상 기도를 앞세웠다. 셋째, ‘Trust Christ’ 아버지는 자신의 거룩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때문에 천국에 들어가심을 믿었고 가르쳤다. 아빠 사랑해요, 곧 다시 만나요”라며 아버지가 남긴 교훈을 간증했다.

성도를 대표해서 조사를 전한 박찬관 집사는 “지난 14년간 충성스럽게 섬기신 미라클랜드침례교회 성도를 대표하여 목사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사랑합니다. 그동안 저희 모두 행복했습니다. 목사님은 삶을 통해 성도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며, 섬겨주셨습니다. 부임해오신 후부터 강단에서 마지막 순간까지 한결같이 사랑을 보여주시고, 삶은 섬김 그 자체였습니다. 목사님의 마음은 아름다움 그 자체였습니다. 성도뿐 아니라 만나는 모든 이에게 동일했습니다. 지방에서 목회하는 분들을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 섬기셨습니다. 부흥회 요청이 있으면 어려운 교회를 우선순위로 다니셨고, 사례비는 사모님의 손에 내어드리면서 돌아오셨죠. 시시때때로 선교사님에게는 며칠씩 시간을 내서 최고로 극진히 대접하시며 말을 들어주는 동무가 되셔서 정성껏 섬긴 우리 목사님. 진정 섬김의 챔피언이십니다. 팬대믹에도 전교인을 일일이 챙기시고, 전교인의 기도제목이 적힌 노트를 보시며 간절히 새벽마다 기도하셨습니다. 연약한 저희를 참으시며 격려하시며 기도로 구원해 주셨습니다. 한 알의 밀알이 되신 섬김과 사랑, 심어진 영혼구원의 사역이 곳곳에서 풍성하게 이어지도록 저를 포함 온 미라클랜드침례교회가 힘쓰겠습니다”라며 감사와 다짐의 마음을 전했다.

계속된 조사에서 한국의 박창환 목사(꿈꾸는)가 “40년 동안 친구와 동역자로 지내온 좋은 것이 있으면 항상 나누기를 좋아하는 목사였고, 언제든지 부탁하면 희생하면서까지 불평하지 않고 잘 들어준 친구였다. 신학교에서 7년 같이 공부하고, 강중침(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10년 동안 부사역자로 동역하면서 영성도 공유하고, 목회 훈련도 함께 공유하고, 강중침에서 1만 명을 초청해서 1200명이 등록하는 위대한 부흥의 자리에도 함께 있었다. 미국에서 세 교회를 섬기면서 최영기 목사님을 만나 저보다 먼저 가정교회를 시작했다. 짧지만 평생 해야 할 일을 그 시간에 다 이룬 것이 아닌가 싶다. 친구지만 얼마나 존경받을 만한 친구였는지 모른다. 나를 행복하게 해 줘서 너무 고마워. 둘도 없는 친구이면서 자랑스러운 친구, 존경할 만한 친구 천국 남대문에서 다시 만나자. 사랑한다”라며 마음을 전했다.

마지막 조사는 전 국제가정사역원장 최영기 목사였다. 최영기 목사는 “이상래 목사님을 많이 좋아했다. 항상 적극적이고 낙관적인 것을 좋아했다. 아무리 힘든 상황에서도 불평이나 남을 원망하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다. 발병 후에도 선교 계획을 짜고, 얼마 전까지만 해도 목회 계획을 짰다. 섬김 때문에 좋아했다. 저는 섬김을 가르치기만 하는데, 이상래 목사님은 실제로 실천했다. 이런 이상래 목사님이 젊은 나이에, 젊은 사모님과 결혼하지 않은 두 자녀를 두고 떠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왜 데려가셨을까. 이 땅에 두어야 할 이유는 손가락이 모자라게 헤아릴 것 같은데, 천국에 데려가실 이유는 없기 때문에 나중에 물어봐야 될 것 같다. 어떤 하나님의 계획은 예수님처럼 누군가가 죽어야 이뤄진다. 한 예가 예수님의 사도 야고보이다. 제자들 중에서도 특별히 3명을 지명해서 훈련시키셨는데 그것이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이다. 베드로는 교회의 초석이 되었고, 요한에게는 인류의 마지막을 보여주셨다. 그런데 사역이 시작되자마자 야고보는 목숨을 잃었기 때문에 아무런 사역을 하지 못했다. 그러면 이 제자의 인생은 낭비된 것일까? 저는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현재와 주위만 보기 때문에 안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야고보가 세상을 떠나야 하는 큰 과업이 있으셨기 때문에 생각한다. 이상래 목사님도 그런 계획 속에서 데려가신 게 아닌가 생각해본다. 하나님의 계획에는 실수가 없으시기 때문이다. 여러분 모두 위로를 받으시기 바란다. 이상래 목사, 천국 남대문에서 만납시다!”라며 심정을 전하고 위로의 메시지를 전달했다.

다 함께 찬송을 부른 뒤 故 이상래 목사의 큰 형 이상문 집사의 감사 인사가 있었다. 이상문 집사는 “평소 존경하고 사랑한 성도님들과 각 교회 목사님들과 함께 드릴 수 있어서 감사하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않고 최우선 순위로 마음과 뜻을 다해 섬겨주신 미라클랜드침례교회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세계 곳곳에서 참여하고 싶지만, 환경이 여의치 않아서 온라인으로 함께 해주신 분들께도 감사드립니다. 미국에서 머무는 동안 유가족들에게 정성으로 섬겨주심에 큰 감사와 감동을 받아서 이 은혜를 어찌 갚을지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미라클랜드침례교회 성도님들이 보여주신 사랑과 섬김을 잊지 않고 돌아가 목사님의 정신을 이어받아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겠습니다. 끝으로 천국환송예배에 함께 하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과 감사를 드립니다”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고, 정영민 목사(포도원, sCA)의 축도로 천국환송예배의 모든 순서를 마쳤다.

장소를 옮겨 드린 하관예배에서는 코너스톤교회 담임 이종용 목사가 말씀을 전해 큰 은혜와 위로를 끼쳤다. 많은 이의 관심을 모았던 고 이상래 목사의 천국환송예배는 예배당과 야외 텐트에서 200여 명이 함께 했고, 실시간으로 중계된 유튜브 방송에 180명이 넘게 실시간으로 접속해서 예배를 드렸으며 영상은 9월 14일 현재 1,776 views를 기록하는 등 지금까지도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상은 https://youtu.be/5RUj9YzShRM(아래 영상)에서 볼 수 있다.

/ 미주=채공명 부장

❏ 이상래 목사 약력(1)

1961년 12월 8일 충남 금산에서 이행우/임항례 사이 4남매 중 막내 출생

1985년 2월 대전 침례신학대학 기독교 교육학과 졸업

1988년 2월 대전 침례신학대학 대학원 졸업 (신학석사)

1989년~1996년 강남중앙침례교회

1992년 3월 28일 민혜정 사모와 결혼하여 하은(딸), 하형(아들)을 얻음

1993년 12월 강남중앙침례교회 목사 안수(김충기 담임목사)

1992~2020년 중국선교

1996년 8월 미국 이민

1997년 4월 일리노이주 사랑침례교회 담임목사 부임

1999년 10월 세인트루이스 반석침례교회 담임목사 부임

1999~2020년 파나마 선교

2006년 12월 미라클랜드침례교회 담임목사 부임

2008~2020년 아프리카 선교

2010년 8월 미드웨스턴(Midwestern)침례신학교 목회학 박사과정

2011년(30대), 2018년(37대), 2019년(38대) 남침례회 남가주지방회장

2014~2020년 멕시코 선교

2015~2020년 국제 가정교회 사역원 동아프리카 선교간사

2019년 국제 가정교회 사역원 이사

2020년 8월 19일 오전 9시 30분 소천

❏ 이상래 목사 약력(2)

1961년 12월 8일 충남 금산에서 이행우/임항례 사이 4남매 중 막내로 출생하셨습니다.

유가족으로는 민혜정 사모님과 하은(딸) 양, 하형(아들) 군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구원받고 주님의 부르심에 순종하여 침례신학대학 기독교교육 학사. 침례신학대학 대학원(신학석사), 미드웨스턴(Midwestern)침례신학교 목회학 박사과정을 마치셨습니다.

이상래 목사님은 후배들에게 따뜻한 사랑과 사역의 모범을 보여주신 멋진 선배님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상래 목사님을 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첫 사역을 시작하게 하셨습니다.

1993년 12월 강남중앙침례교회에서 김충기 담임목사님으로부터 목사안수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기독교 한국 침례회 진흥원에서도 청소년 사역도 하셨습니다.

이상래 목사님의 모든 사역과 생활의 첫 번째 우선순위는 영혼구원이었습니다.

“천국에 갔을 때 다시 만난 성도로부터 내가 목사님을 통해 예수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이 소망이라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목사님은 언제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는 가장 앞장서서 달려가셨습니다.

30여 년의 선교사역에도 1992~2020년 중국선교, 1999~2020년 파나마 선교, 2008~2020년 아프리카 선교, 2014~2020년 멕시코 선교를 풀타임 선교사님처럼 섬기셨습니다.

1996년 미국으로 이민오셔서 일리노이주 사랑침례교회, 세인트루이스 반석침례교회를 담임목사로 섬기셨고, 2006년부터 미라클랜드침례교회 담임목사로서 성도들을 말씀으로 양육하고 사랑으로 돌보셨습니다.

기관사역으로는 남침례회 남가주지방회장으로 섬기시면서, 침례교회들과 교단을 위해서도 많은 일들을 하셨습니다.

국제가정교회사역원 동아프리카 선교간사와 국제가정교회사역원 이사로 사역을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이상래 목사님은 자상한 남편과 아버지로, 많은 영혼을 주께로 인도한 전도자로, 영혼을 돌보는 치료자로, 멋진 선배님으로, 충성된 종의 모습으로 살아오셨습니다. 그리고 2020년 8월 19일 오전 9시 30분 맡겨진 모든 사역을 마치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셨습니다.

미주침례신문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