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알베르 까뮈의 ‘오해’
작가 알베르 까뮈의 생애와 작품 세계
알베르 까뮈(Albert Camus)는 프랑스 출신의 사상가, 수필가 그리고 소설가다. 그는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걸출한 문학가다. 그는 궁핍한 노동자인 아버지와 스페인계 후손인 어머니 사이에서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카뮈가 돌도 되기 전에 아버지는 전사했다. 과부가 된 어머니는 카뮈와 형 뤼시앵을 데리고 알제리 빈민굴로 이사하여 외할머니와 불구자인 외삼촌과 함께 방이 2개뿐인 아파트에서 살았다. 어머니는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가정부로 일했다.
카뮈가 처음으로 발표한 수필집 〈표리〉(1937)는 어린 시절의 어둡고 가난했던 어머니와 외할머니 및 외삼촌과의 삶을 그린다. 두 번째 수필집 〈결혼〉(1938)은 알제리 시골에 대한 서정적인 명상이 담겨 있다. 이는 자연의 아름다움은 가난한 사람들도 누릴 수 있는 부(富)임을 보여준다. 두 권의 수필집은 모두 인간의 약함과 물질세계의 영속성을 대비하고 있다.
1918년에 카뮈는 공립 국민학교에 들어가, 뛰어난 교사 루이 제르맹의 가르침을 받는다. 제르맹은 카뮈가 알제 리세(고등학교)에 장학생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도와주는 등 까뮈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34년 뒤에 카뮈는 노벨 문학상 수상연설을 제르맹에게 바쳤다. 스승 제르맹에 대한 카뮈의 존경심이 어느 정도였는지 짐작이 가는 장면이다.
까뮈는 인권주의자로 한때 공산 사상에 심취했었다. 그는 한때 좌파적인 모습이었지만, 결국은 유물사관이나 혁명에 의한 과격한 사회변혁을 주장하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 사상에서 등을 돌리고 점진적이고 개량적인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민주주의 진영을 지지하는 모습을 보인다. 혁명과 과격한 개혁도 마다하지 않았던 사르뜨르의 자세와 차이가 있는 점이다. 결국 공산주의를 ‘문명의 질병’ ‘살인의 사상’으로 규정했던 카뮈는 사르트르에게 버림받았다.
알베르 카뮈는 작가이며 모랄리스트이자 정치이론가다. 그는 2차 세계대전 후의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체, 나아가 전 세계에서 그의 세대의 대변가이자 다음 세대의 스승으로 인정을 받는다. 그의 글들은 주로 낯선 세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의 고독, 자신과 화해하지 못하는 개인의 소외, 악의 문제, 그리고 죽음이라는 임박한 파국을 이야기함으로써 전후 지식인들의 소외 의식과 환멸을 정확하게 반영했다. 카뮈는 많은 동시대인의 허무주의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진실과 중용 및 정의 같은 가치에 대해서도 옹호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까뮈의 ‘오해’의 줄거리
중부 유럽의 한적한 시골, 평화롭게 흐르는 강 언덕에 세워진 여인숙에 모녀가 함께 여인숙을 운영하고 있었다. 모녀는 돈을 벌려고 집을 나가 돌아오지 않는 아들과 오빠를 기다리며 여인숙을 운영했었던 것이다. 겉으로 보기는 지극히 평범하고 선량해 보이는 모녀였지만 그들에게는 남모를 비밀이 있었다. 모녀는 집 나간 아들과 오빠를 기다리며 보내는 세월 속에서 가난과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끔찍한 범행을 저지르고 있었다. 여인숙에 투숙하는 손님 가운데 부자처럼 보이는 사람이 있으면 음식에 독약을 타 먹여 죽인 뒤 시체를 강물에 던져 버리고 금품과 재물을 챙기곤 했다.
이 모녀에게는 무서운 욕심이 있었다. 금품에 욕심을 품고 있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무료함과 적적함을 달래기 위해 사람의 생명을 해하는 무서운 이기심이 있었다. 나아가 자신들의 행복이나 재미를 위해 아무 짓이나 스스럼없이 범하는 잔인한 모녀였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청년이 투숙객으로 들어온다. 이 청년은 어려서 객지에 나가 성공한 후 어머니와 누이를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서 돌아온 것이다. 청년은 어머니와 누이가 어떻게 사는지 보고 싶어 신분을 숨기고 숙박을 신청한다. 그날도 모녀는 천연덕스럽게 투숙객을 독살한다. 투숙객이 오빠인 줄 꿈에도 모르는 누이는 음식에 독약을 타면서 이렇게 독백한다. “우리에게 행복과 사랑의 문을 열어줄 돈을 위해서 살인을 하는 거야.”
이튿날 아침 모녀는 늘 그랬던 것처럼 자신들이 죽인 사람의 시신을 강물에 버리고 망자의 지갑을 뒤진다. 그 청년이 남긴 돈을 찾았던 것이다. 그들이 청년의 지갑에서 돈을 꺼내다 청년의 신분증을 보고서 소스라치게 놀란다. 자신들이 몇 푼의 돈을 위해서 독약을 먹여 죽인 그 청년이 자신들이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던 아들이요, 오빠였던 것이다.
망연자실한 어머니는 아들의 시체를 버렸던 강물에 자신의 몸을 던진다. 누이도 이런 말을 남기며 죽음을 택한다. “천명이 이 범죄에 가담했다고 할지라도 죄는 불행할 뿐이다.” 마지막 순간에 정신을 차린 것이다. 돈이 행복과 사랑의 문을 열어줄 유일한 길이라고 오해했던 처절한 절망의 끝에서 죽음을 택한다. 모녀는 끔찍한 죄를 아무런 거리낌 없이 저질러왔지만 얻은 것은 성공해 돌아온 아들과 오빠를 살해한 자신과 자신들의 죽음뿐이었다. 부족한 인생의 바보스런 오해가 낳은 비극을 잔인하게 그리고 있다.
*작품 해설과 메시지 정리
까뮈의 ‘오해’는 인간이 가진 오해의 위험성을 고발한다. 본 작품에는 몇 가지 오해가 등장한다. 이 오해들은 인간성을 파괴하고 삶을 불행으로 이끄는 치명적인 오해들이다. 까뮈가 고발하는 첫째 오해는 모녀가 오매불망 기다리던 아들과 오빠를 알아보지 못하는 오해다. 그냥 돈 많은 투숙객으로 알아보는 오해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아들이 변장을 해도 아들을 몰라보는 어머니가 있을까? 까뮈는 아들과 오빠를 몰라보는 이 모녀의 모습에서 가족과 가정의 가치를 몰라보는 타락한 인생들의 불행을 보여 준다.
까뮈가 고발하는 두 번째 오해는 돈이 행복과 사랑의 문을 열어 준다고 믿었던 것이 오해다. 오빠를 죽일 독약을 음식에 넣으며 뇌까리는 독백은 몸서리칠 만큼 잔인하다. “우리에게 행복과 사랑의 문을 열어줄 돈을 위해서 살인을 하는 거야.” 참으로 소름 돋는 잔악성이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행복과 사랑의 문을 돈이 열어 줄까? 행복을 돈으로 사려는 사람들의 불행한 오해를 고발한다.
까뮈가 고발하는 세 번째 오해는 사람을 죽이는 살인을 감출 수 있다는 망상적 오해다. 그들은 시신을 강물에 던지며 완전 범죄를 꿈꾸었다. 그들은 어느 정도 완전 범죄를 즐겼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의 아들과 오빠를 죽이면서 자신들의 벌을 스스로 받는다. 살인 피해자의 고통을 뼈저리게 느끼며 결국 목숨을 버린다. 두렵고 무서운 것은 이 치명적이고 파괴적인 오해들이 우리 지천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