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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
신약성경의 배경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70인경 소개”

<span style=" font: bold 0.7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강태광 목사의 문학의 숲에서 만나는 진리의 오솔길]</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신약성경의 배경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70인경 소개”</span>

강태광 목사(World Share USA대표)

신약성경의 배경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 70인경 소개”

바울과 초대 교회가 주도한 1세기 기독교 선교는 대단한 기세로 확장됩니다. 복음이 요원의 불길처럼 세계로 번져나갑니다. 1세기 그리고 2세기 초반의 선교는 마른 장작에 불이 붙는 것과 같습니다. 그 선교현장을 보면 1세기 유대와 로마 제국 상황은 기독교 복음을 실어 나르는 도구였습니다.

먼저 로마시대 복음 확장에 중요한 통로는 로마의 도로망입니다. 로마는 고속도로 제국이었습니다. 정복지마다 로마와 연결하는 도로를 건설했습니다. 당시 세계의 모든 도시는 로마로 통했습니다. 바울은 전도여행에서 로마의 도로망을 백분 활용합니다. 강도와 산적들이 우글거렸던 시대에 로마군인들이 통제하는 로마 도로를 이용하여 안전하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둘째 로마시대 복음 확장에 중요한 수단은 세계화된 코이네 헬라어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에서 사회적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당시 공용어였던 헬라어를 구사해야 했습니다. 선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의 선교팀은 코이네 헬라어를 구사하는 헬라파 유대인들이었습니다.

셋째 로마시대 복음 확장에 중요한 통로는 흩어진 디아스포라 유대인입니다. 그들의 살아 있는 신앙은 로마 주요 도시마다 회당을 세웠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증거 했습니다. 이들의 감화를 받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경외자(God-fearer)들이 양산됩니다. 개종직전의 상태였던 경외자들이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였습니다.

넷째 로마시대 복음 확장에 중요한 기초는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셉튜어전트, 70인경 성경)입니다.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은 온 세계에 확산 보급되어 읽힙니다. 온 세계에 퍼진 헬라어 성경을 많은 이방인들이 읽습니다. 이렇게 이방인들이 구약에 친숙하게 되어 구약이 소개하는 예수님을 믿는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이상 네 가지 요소들이 다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헬라어 성경 번역입니다. 헬라어로 번역된 구약성경은 셉튜아진트 혹은 70인역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공식적인 국제어였던 헬라어로 번역된 것은 선교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구약의 헬라어 번역에 대한 설명은 아리스테아스 편지(the Letter of Aristeas)에 나옵니다. 이 편지는 톨레미 왕국의 관료였던 아리스테아스가 기록한 문서인데 프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가 이집트를 다스릴 때 기록했다고 전해집니다. 이 서신을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인용함으로 70인경은 물론 아리스테아스 서신도 유명하게 되었습니다. 70인역은 필로, 탈무드와 교부들의 글에도 인용됩니다. 신약에서 인용된 구약은 70인 역을 따릅니다.

BC323년 알렉산더가 후계자 없이 사망하자 영토는 네 명의 부하 장군이 분할 통치합니다. 애굽은 프톨레미, 시리아는 셀류쿠스, 마케도니아는 카산더, 그리고 비두니아는 리시마쿠스가 다스립니다. 알렉산더 후, 분할될 때 유대는 셀류쿠스 왕조(Seleucus)에 지배를 받았으나 BC 306년 교활한 톨레미 소테르(Ptolemy Soter)가 유대인들이 모두 안식을 하고 있을 때에 무력으로 예루살렘을 침공하여 정복합니다. 예루살렘은 이렇게 안식일에 침공을 받으며 여러 차례 지배를 받았습니다. 결국 톨레미의 지배를 받으며 예루살렘은 애굽의 지배를 다시 받습니다.

그리고 20여 년 후에 톨레미 아들 톨레미 2세 필라델푸스(Ptolemy II Philadelphus)가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를 계승(283-245 BC)하면서 유대인의 위상이 달라집니다. 톨레미 필라델푸스 주변에 유대인의 편에 섰던 두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둘은 왕의 절친이었던 아리스테아 그리고 왕실 도서관 담당관인 데메트리우스였습니다. 이 두 사람이 유대인들의 율법(구약성경)을 왕립 도서관에 소장하자고 제안하면서, 이 율법(구약)을 헬라어로 수집(번역)하자고 왕에게 제안합니다.

이 제안을 기쁘게 받아들인 톨레미 필라델푸스가 주도하여 율법 번역의 대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톨레미 필라델푸스왕은 이 번역 작업을 위해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려는 노력을 했습니다. 먼저, 애굽에 잡혀와 있던 유대인 약110,000명을 돌려보내고, 그들이 속해 있었던 애굽 가정에는 그들의 몸값을 지불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당시 유대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대제사장 엘르아살(Eleazar)에게도 엄청난 양의 돈(100 달란트)과 제물들(금은 보석)을 친서와 함께 보내며 율법서를 헬라어로 번역하고자 하는 자신의 의지와 정확한 번역을 위해 대표를 선발하여 보낼 것을 요구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반가운 소식을 듣게 된 대제사장 엘르아살은 흥분합니다. 원로회의를 소집하여 긍정의 결론을 내리고 왕에서 응락의 답장을 톨레미 필라델푸스에게 보냅니다. 그리고 성경을 번역할 각 지파 대표 72명을 율법서와 함께 애굽으로 파견합니다. 애급에서 톨레미 필라델푸스 왕은 율법서를 보고 기쁨의 눈물을 흘렸고, 대표단을 환대 했다고 전해집니다. 이렇게 히브리어로 된 율법서(구약)은 헬라어로 번역되기 시작했습니다.

유대 지파를 대표하는 72명의 장로들은 파로스(Pharos) 섬에서 구약을 헬라어로 번역했습니다. 유대 장로들(72명)의 율법 번역 작업은 72일 만에 끝이 났다고 전해집니다. 이 경우 율법은 모세오경만을 의미할 것으로 보입니다. 이렇게 번역된 70인경 혹은 70인역 헬라어 성경은 초대 교회기간에 반복적으로 인용되면서 점차 미화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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