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고] 제9대 총회장 박승환 목사와 박선부 사모 소천
사모 먼저 보내고 하루 못 돼 함께 떠난 특별한 사연
장례는 COVID-19로 인해 유가족끼리 조용히 지내기로
우리 총회 제9대 총회장 박승환 목사와 박선부 사모가 하루를 사이에 두고 지난 4월 7일과 8일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한인필그림교회(이기영 목사, sCA) 원로목사였던 박승환 목사는 치매와 뇌졸중(중풍)으로 고생하던 아내 박선부 사모를 정성스럽게 간호하다가 지난 4월 7일 오후 6시 20분에 먼저 하나님 품으로 떠나보내고 난 후 약 21시간 뒤인 다음날 8일 오후 3시 40분에 박 목사도 하나님의 품으로 떠나게 된 것이다. 향년 92세(박승환 목사, 1928년 5월 18일 출생), 91세(박선부 사모, 1929년 8월 4일 출생)였다.
평소에도 금실이 좋았다는 박 목사 부부는 점점 쇠약해지는 신체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서로 의지하며 잘 지냈는데, 박 사모에게 치매가 오자 박승환 목사가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고 한다. 그런 가운데 박 사모에게 뇌졸중이 추가로 왔고, 박 사모가 떠난 뒤 다음날 박승환 목사가 그 뒤를 따랐다.
한인필그림교회를 담임하는 이기영 목사는 본보와의 전화 통화에서 “처음에는 박승환 원로목사님이 편찮으셨어요. 한 1년 전부터 폐에 물이 차서 힘들어하셨죠. 병원에서 폐의 물을 빼고 조심하시고 정기검사 받으면서 계셨는데 호흡이 힘드니까 산소 호흡기를 가지고 다니시면서 생활하셨어요. 그러다가, 박선부 사모님께서 치매가 생기신 겁니다. 양로호텔이라는 요양시설이 잘된 곳이지만, 박 목사님은 사모님 곁을 항상 그림자처럼 지켜 주셨어요. 박 목사님은 간호하시느라 소위 말해서 당신은 아플 시간이 없다고 웃으면서 말씀하셨지요. 그런데 2~3주 전에 박선부 사모님에게 뇌졸중이 왔어요. 목사님께서 마음의 준비를 해야 할 것 같다고 말씀을 하셔서 교인 단체 카톡방에 상황을 설명했는데, 이틀 뒤에 깨어나셨습니다. 그러나 뇌졸중 때문에 반신이 마비되셨어요. 그러다가 그저께(7일) 오후 6시 정도 자녀분들에게 사모님이 소천하셨다는 연락이 왔습니다”라고 박선부 사모의 소천에 관해 설명했다.
계속해서 이기영 목사는 “그런데 자녀분들 얘기로는 어머님이 돌아가시자마자 아버님이 긴장이 풀리셔서 그러신지 눕고 싶다고 하시며 누우셨는데 혼자 못 일어날 정도로 힘을 잃으셔서 걱정된다고 호흡도 힘들다고 연락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교인들과 기도하면서 양로호텔이 일체 면회가 안 되지만, 그래도 내가 가봐야 하지 않을까 했어요. 하지만 밤새 주무셨는데 의식이 없으시다며 마음의 준비를 해야겠다는 연락을 받았고 어제 오후 2시 정도에 소천하신 것 같습니다”라며 “하루 상간이지만 24시간 안에 같이 가신 것입니다. 두 분이 원래 금실이 좋으셨어요. 항상 손 붙잡고 다니셨습니다. 그래서 박 목사님을 아는 분들은 ‘아내를 떠나보내고 자기도 데려가달라고 기도하지 않았을까’ ‘목사님이 먼저 가시면 치매 걸린 사모님을 돌보지 못하니까 양로병원에서 기계에 의해 몇 년 고생하지 않았을까 해서 견디셨던 것 같다’라는 말씀도 하십니다. 그래서 두 분을 떠나보낸 것은 안타깝지만, 다들 기쁨으로 오히려 부러워하는 분들도 많은 것 같습니다”라며 박 목사 부부의 소천에 대한 상황을 전했다.
드라마 같은 모습으로 우리 곁을 떠난 박승환 목사와 박선부 사모는 존경받는 목회자 부부였다. 우리 총회 제9대 총회장을 지낸 박승환 목사는 지난 1978년 한인필그림교회를 개척해 1993년까지 담임했으며, 샌디에고제일침례교회와 가스펠침례교회 등에서도 시무했다. 또한 시인협회에 가입된 공인된 시인이었던 박선부 사모는 뜨인돌선교회를 조직해 ‘뜨인돌’이라는 월간지를 발행해 신앙인들에게 유익을 끼치기도 했다.
장례의 시기와 절차는 COVID-19 팬데믹 때문에 모든 사람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유가족끼리 조용히 지내기로 결정됐다. 장례에 관한 문의는 한인필그림교회 이기영 목사(323-807-4741)에게 연락하면 된다.
/ 미주=채공명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