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드웨스턴 신학칼럼-조성돈 교수] 뉴노멀의 뉴처치
조성돈 교수 – 미드웨스턴 침례신학대학원 실천신학 객원교수
뉴노멀의 뉴처치
코로나19의 영향력은 무서웠다. 아니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더 무서운 일들이 기다릴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이 전염병 하나로 이렇게 세상이 변하게 될지는 몰랐다. 전염병으로 역사가 바뀐다는 것은 책에서나 나올만한 이야기인 줄 알았지 21세기 현대사회에서 이렇게 나타날 줄은 꿈에도 생각해 보지 못했다.
혹자는 이번 사태로 문명의 대전환이 일어날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그렇게까지 되리라는 믿음은 없지만 많은 것들을 바꾸어 놓았고, 바꾸게 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 대한민국이 보건선진국으로 드러난 것이나, 그렇게 높게 보았던 미국이나 유럽의 국가들이 이렇게 허술하게 무너진 것을 목격하게 된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다. 이제 다시 한번 동/서의 전환이 가능할지 모르겠다.
요즘 자주 듣는 이야기가 뉴노멀(New Normal)이다. 평범함이나 일반이라는 것들이 새롭게 된다고 하니 근본적인 변화가 기다리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닥칠 미래에 대해서 깊은 고민을 하고 있다. 이들의 의문에 답하려고 학자들과 지식인들이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서 많은 예측을 하고 있다. 각 곳에서 앞으로 닥칠 일에 대해서 ‘예언대회’가 열리고 있다.
교회라고 다르지 않다. 실은 초기에 신천지가 전염병의 집단숙주가 되면서 교회는 직격탄을 맞았다. 사람들의 관심이 교회로 몰리면서 교회의 일거수일투족과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사회의 관심을 받았다. 그 가운데 교회의 예배를 모여서 드리는 것이 가능한가의 논쟁이 일었다. 빠르게, 온라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일부에서는 전쟁 중에도 예배를 멈춘 적은 없었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결국, 6·25 때 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는 코로나19 사태로 인해서 거의 모든 예배는 온라인으로 전환되었다. 그러나 중요한 동기는 신천지 모임이 금지되면서 이들이 기존 교회로 가서 코로나를 퍼트릴 것이라는 의심쩍은 문자였다. 덕분에 한국교회는 빠르게 온라인 예배로 전환되었고, 주일예배에 대한 논쟁은 기술적 문제로 넘어가 버렸다. 즉 예배의 실시간 중계를 어떻게 실현할 것인가의 논의였다.
실은 온라인 예배의 도입으로 인해서 우리는 몇십 년 진행해야 할 논쟁을 한 번에 뛰어넘었다. 80년대 순복음교회가 위성방송을 이용하여 ‘지성전’에서 여의도의 설교를 생방송으로 내보낼 때 우리는 큰 충격에 빠진 적이 있다. 그때 그 불경함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던 많은 분들도 있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3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의 거의 모든 교회들이 인터넷을 이용하여 예배를 생중계하게 되었다. 놀라운 것은 불과 한두 달 사이에 대부분의 교회들이 생중계 시스템을 이루었다는 점이다. 지금 내가 나가고 있는 30명 정도 모이는 교회에서도 유튜브를 이용해서 생중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큰 어려움은 아니라고 보이나 이렇게 순식간에 한국교회가 생중계를 하게 된 것은 정말 기적과도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전환은 교회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고, 앞으로 더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먼저는 교회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우리의 교회론은 주일예배를 중심으로 형성되었다. 주일에 모여서 예배드리는 공동체, 내지는 교회당을 중심으로 모이는 군중들을 교회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러한 모임이 불가하게 되었다. 당연히 모였던 교회를 내려놓고 나니 교회에 대한 근본적인 질문이 생겼다. 그동안 건물이 공동체를 지배하고 있었는데, 공동체가 건물을 떠나고 나니 우리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생겼다. 예배당에서 주일 11시에 모이지 않는 우리는 한 교회라고 할 수 있는가에 대한 의문이다.
거꾸로 교회당을 비워놓고 온라인으로 모이는 우리는 교회인가도 물어야 한다. 한 예배를 각처에서 온라인으로 참여하는 이들을 향해 ‘우리는 교회’라고 한다면 이런 공간적 초월은 시간적 초월을 용납하도록 하지 않을까. 아무래도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인데 꼭 실시간으로 드려야만 하는가의 질문이다. 혹시 성령의 임재가 실시간으로만 임한다는 성경구절이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내가 편한 시간에 드려도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공간과 시간이 깨어지고 나면 이제 남은 것은 형식의 문제이다. 부득불이기는 하나 각처에서 온라인으로 드리는 예배를 주일예배로 대체했다. 그런데 착한 한국교회 교인들은 86.6%가 예배 처음부터 끝까지 시청했다고 한다. 또 68.2%는 교회 예배 때처럼 찬양·기도하면서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과연 이게 지속될 수 있을까. 이제 온라인 예배가 예사로워지면 사람들은 전체 순서가 아니라 설교만 듣게 될 것 같다. 그것도 지루하다면 2배 속도로 보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다 우리 교회가 아니라 남의 교회 설교를 기웃거리게 되고, 설교도 지루하다고 유튜브의 동영상으로 대체할지 모르겠다. 이렇게 형식이 무너지는데, 문제는 어디까지 주일예배로 쳐줄 것인가의 문제가 남는다.
매체의 변화는 콘텐츠의 변화를 가져오게 되어있다. 유튜브가 지상파나 케이블 방송과 같은 콘텐츠를 가지지 않는다. 방송처럼 1시간, 2시간짜리 콘텐츠를 유튜브에서 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 아니 사람들의 관심을 잃고 도태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 온라인으로 전환을 했고, 그야말로 유튜브라는 매체를 이용하고 있다. 그런데 유튜브에 맞는 콘텐츠가 아니라 오프라인의 콘텐츠를 온라인으로 중계하는 데서 멈춰있다. 이제 곧 사람들은 이에 맞는 콘텐츠를 찾아 나설 것이고 회중의 관심은 전환될 것이다. 앞으로 한국교회에 남은 과제는 온라인에 맞는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겠지만 이를 통해 교회는 새로운 스타를 만들고, 새로운 판도를 만들어 갈 것이다.
앞으로 이렇게 온라인으로 모이는 회중들을 교회라고 할 수 있느냐의 문제가 나올 것이다. 같은 예배, 같은 설교, 또는 같은 콘텐츠를 중심으로 모이는 온라인상의 회중들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 즉 ‘성도의 교제’라고 할 수 있는지의 문제는 지속적으로 남을 것이다. 물론 가나안 성도나 평신도 단체들의 모임 역시 이 논쟁에서 함께 가게 될 것이다.
지난 몇 달간 한국교회는 치열한 싸움을 진행했다. 여러 암담한 예측에도 불구하고 나는 한국교회의 미래에 대해서 그렇게 어둡게 보지 않는다. 치열한 싸움의 결과는 우리가 예측하지 못했던 새로운 미래를 가져올 것으로 믿기 때문이다. 비록 한국교회가 ‘B.C.’로 돌아갈 수는 없을지 몰라도 ‘A.C.’에서는 새로운 형태의 한국교회를 만들 것이고, 그것은 새로운 시대에 좀 더 능동적인 모습일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