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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울지 않았으나, 모두가 울었던 “축제의 장례예배”

아무도 울지 않았으나, 모두가 울었던 “축제의 장례예배”

금혼식을 1년 앞두고, 최영기 목사의 아내 최혜순 사모 소천

故 최혜순 사모(1947~2020)의 천국환송예배가 지난 7월 1일 저녁 7시 30분 휴스턴서울교회(이수관 목사)에서 드려졌다. 최혜순 사모는 휴스턴서울교회의 은퇴목사이자 ‘가정교회’라는 교회의 모델을 제시해 전 세계에 선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최영기 목사의 아내이다.

휴스턴서울교회 교회장으로 진행된 이날 예배는 COVID-19로 인하여 가족과 목회자들을 제외하고 95석만(전체 125명) 허용된 상태에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본보가 취재할 당시 실시간 접속이 약 1,300으로 많은 이들이 온라인으로 함께 장례에 참석해 고인의 천국 입성을 축하하고, 유족을 위로했다. 이날 예배는 특별히 “천국의 입성을 진심으로 축하하는 자리가 되게 해 달라. 가진 옷 중에서 가장 화사한 옷으로 입어달라”는 최혜순 사모의 뜻에 따라 검은 옷이 아닌 밝은 옷차림으로 진행됐다. 이수관 목사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예배는 故 최혜순 사모의 사진과 휴스턴서울교회 성도들의 마음이 담긴 영상으로 시작됐다. 이어 이수관 목사가 예배 참석자에 대한 인사말과 안내 사항을 전했다. 이수관 목사는 오해가 없도록 이날 예배의 특별한 옷차림과 화장(火葬)하기에, 관 없이 사진만 놓고 예배를 드린다는 것도 아울러 안내했다.

이수관 목사는 “최 사모님의 요청이었던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께’ 찬송을 부르겠습니다. 예수님을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자신을 선택해 믿게 하신 것이 크신 일이었다고 고백하셨습니다”라며 천국환송예배에 고인이 두 곡의 찬송을 선정했으며 다 의미가 있다고 안내했다.

계속해서 석태인 집사장이 대표로 기도했으며 최혜순 사모를 기억하는 시간으로 최선주 자매, 김홍건 집사, 전석영 집사(영상)의 추모순서가 이어졌다. 최혜순 사모의 딸 최선주 자매는 추모사를 통해 “엄마는 강하고, 부지런하고, 품위가 있는 분이었다. 외모와 몸가짐은 단정했고 패배감에 젖은 적이 없었다. 1947년에 이북 개성에서 태어나 6·25 전쟁으로 온 가족이 남하했다. 맏며느리인 할머니와 알코올 중독의 할아버지 사이에서 엄마는 강인하고 독립성이 강하게 성장했다. 아빠(최영기 목사)와 함께 미국에서 많은 것을 이루었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으나 하나님의 뜻을 깨달은 후에는 사모라는 새로운 역할에 전력을 다했다. 1996년 여름 엄마 난소에서 물혹이 발견됐는데, 암으로 밝혀졌고, 엄마는 절대 암에게 지지 않기 위해 생활습관을 다 바꿨다. 교회 전체가 한마음으로 엄마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고, 그 기도는 24년 동안 지속됐다. 하나님은 기도와 엄마의 소원을 들어주셔서 평안하게, 고통 없이 가족들이 둘러보는 가운데 돌아가셨다. 엄마, 사랑해요. 열심히 부지런히 사셨어요. 이제 편히 쉬시고, 천국에서 다시 만나요”라며 간증과 함께 어머니와의 추억을 통해 고인의 삶을 나눴다.

계속해서 김홍근 집사가 교인의 한 사람으로 추모사를 전하며 “최혜순 사모님은 신비로운 분이셨고, 무척 인간적이고(편하고) 지혜로운 분이었다. 그리고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분이셨다”라며 고인과의 추억을 나누며 회고했다. 마지막 추모사는 최혜순 사모의 절친 전서경 은퇴권사(남가주사랑의)가 영상으로 함께한 학창시절과 신앙생활에 대한 추억을 회상하며 추모사를 전해 많은 감동을 주었다.

추모사 후에는 휴스턴서울교회 집사회에서 특별찬양을 불러 은혜를 더했고, 찬양 후 이수관 목사가 단에 올라 말씀을 전했다. 이수관 목사는 “아무리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알지만, 사랑하는 아내를 먼저 보내고 어쩔 수 없이 상실감이 크실 존경하는 최 목사님과 가족 분들께 하나님의 특별한 임재의 위로가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또 참석하고 싶은 분들, 전 세계에서 사모님을 좋아해 주셨던 분들에게 하나님의 위로와 평강과 소망이 함께 하시길 바랍니다. 최 사모님은 물론 영광스럽게 천국에 입성하셨지만, 이 땅에서 그분을 잃은 것은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은퇴하셨지만, 여전히 어른으로서 우리 곁에 오래 계셨으면 하는 것이 우리 소망인데 말이죠. 가까이에 존경할만한 어른이 계시다는 것이 우리에게, 가정교회에 큰 복인지 모릅니다. 특별히 사모님은 목회자의 아내로서 오랜 시간 동안 병마와 싸워 이기신 분으로서 계시는 것만으로도 힘이 됐는데 떠나셨다는 것이 못내 아쉽고 서운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1998년에 이 교회에 와서 사모님을 뵈었을 때, 그 이미지가 엄마 같았습니다. 이미지도 저희 어머니와 많이 닮으셔서 뵈면 설레고 참 좋아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그런 감정이었다는 것을 한 번도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라는 소회로 말씀을 시작했다.

이수관 목사는 “앞에서 사모님의 삶을 모두 잘 정리해주셨지만, 사모님을 대표하는 몇 가지 말이 있는 것 같습니다. 첫째, 참 강한 여성이었습니다. 아픈 중에도 남편의 사역을 완벽하게 서포트하면서 어려움을 당당하게 이겨낸 강한 여성이셨습니다. 어느 날 주일 아침에 신문을 가지러 나가셨다가 소낙비가 와서 서두르시다가 다리를 삐끗하며 부러졌다고 합니다. 최 목사님은 설교해야 하니 교회로 향하고, 사모님은 그 아픔을 견디면서 도움을 기다렸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저게 목회자의 삶이구나’ 강하게 뇌리에 남았습니다. 그일 뿐 아니라 늘 최 목사님의 사역을 최대한 돕기 위해 애쓰셨습니다. 목사님이 오래 출타를 하실 때면 늘 언제나 혼자 아프시고, 혼자 병과 싸워내신 분이십니다. 아마 외로울 때가 많으셨을 텐데 표 내지 않고 뒤에서 목사님의 사역을 100% 후원했던 강한 분이셨습니다. 시편 92:10 ‘그러나 주님은 나를 들소처럼 강하게 만드시고, 신선한 기름을 부어 새롭게 하셨습니다’라는 구절이 잘 어울리는 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이수관 목사는 “둘째로 최혜순 사모님은 우리에게 기도의 역사가 무엇인지 참 많이 보여주셨다. 특히 2년 전, 급성 패혈증으로 신체 기관이 하나씩 기능 정지되기 시작해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리라는 판정을 받았다는 연락을 수요예배 직전에 받았기 때문에, 그날 순서 다 무시하고 모인 분들과 함께 간절히 기도했었다. 기도가 끝날 때에 기적적으로 사모님의 장기가 회복되기 시작하셨어요. 우리도 놀라고, 가족들도 놀랐었다. 그뿐 아니라, 사모님의 24년 투병생활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에 어떻게 응답하시는지를 잘 보여주셨습니다”라며 렘 33:3이 우리에게 역사하신 구절이라고 전했다.

이어서 셋째로 최혜순 사모는 ‘참 따듯한 위로자’였다며 아픈 사람에게 특별한 마음이 있었던 상처 받은 치유자로서 치유자의 삶을 살았기 때문에 사도바울이 빌레몬에게 했던 칭찬 빌레몬서 1:7이 적합하다고 전했다. 또한, 아픈 것에 집중하지 않고, 하루하루의 삶에 집중하시는 모습이 최 사모의 아름다움이었고, 그 아름다움은 세상을 떠나기 전에 더 빛났다고 전했다. 4주 전에 병상을 찾았을 때 예수님이 얼마나 크신지, 그분을 알면 알수록 눈물이 난다며 눈물을 흘렸는데, 예수님께서 마지막 선물로 따듯한 동행을 누리게 해 주신 것 같다. 그렇게 최선으로 사셨고, 예수님과 동행하다 천국에 입성하셨다고 강조했다.

또한, 이수관 목사는 “천국에서의 삶은 아마도 이 땅에서 예수님이 좋아서 흘렸던 눈물과는 비교할 수 없는 환희의 눈물을 흘리고 계실 것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다스림’이라고 표현하는데, 이 땅에서 건강으로 인해 맛보지 못했던 기쁨을 누리고 계실 것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포기했던 것을 보상받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천국에 대한 그리움이 점점 커가는데 이유 중의 하나는 먼저 가신 분들과의 재회가 기대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 기대로 사모님을 가슴 한구석에 묻어둡시다. 그리고 이 땅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삶에 충실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모님께서 이 땅에서 소중하게 여기셨던 것들을 다시 한번 붙잡았으면 좋겠습니다. 첫째는 예수님을 아는 것이고 둘째는 그분이 하셨던 것처럼 성도들을 격려하고 사랑하며 무엇보다 교회를 사랑하고 섬기면 좋겠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 예배를 보시는 가정교회 목사님들, 사모님들 어디 계시든 가정교회 특히 신약교회를 열심히 만들어가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사모님이 바라시는 것일 겁니다. 가정교회를 이루시고 또 주변의 교회를 돕는 교회가 돼서 여러분이 있는 곳에서 그분의 뜻을 잇고 하나님의 마음을 시원하게 하시는 그런 목회자님, 사모님 되시길 바랍니다. 우리 성도들도 뜻을 이어서 성도를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라며 말씀을 마무리했다.

설교 후 최 사모가 좋아했던 찬송가 442장 “저 장미꽃 위에 이슬”을 함께 부른 뒤 가족 대표로 최영기 목사가 감사인사의 시간을 가졌다. 최영기 목사는 “장례예배가 잔치가 되게 해달라고 아내가 부탁을 해서 눈물 흘리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까지 하고 올라왔는데 쉽지가 않습니다. 저는 항상 아내가 믿음이 별로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영접도 제가 하니까 쫓아서 했고, 신학교 갈 때는 반대했고 목사 사모가 됐을 때는 항상 야당이었습니다. 그러나 임종을 앞두고 많은 대화를 하면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제 아내는 말씀의 삶을 인도했는데, 학생과 함께 성경을 통독하면서 인도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도할 때 이것을 통해서 예수님을 잘 알게 해달라고 기도했답니다”라며 “요한복음을 통해 아내를 만나주셨습니다. 사마리아인은 유대인이 개라고 멸시하는 그룹이고, 당시 여성은 낮게 봤습니다. 게대가 성적으로 문란했고, 결혼도 안 하고 동거 생활하던 여자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관심도 전혀 없는 이런 여성을 예수님이 먼저 다가가셨고, 예수님을 주님으로 영접하게 하셨습니다. 이 사건을 읽으면서 갑자기 ‘내가 바로 이 사마리아 여인이다’라는 깨달음을 통해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흐르며 그때부터 예수님과 사랑에 빠졌다고 했다.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알게 됐다고 했습니다”라며 간증했다.

계속해서 최영기 목사는 “믿음이라는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의미한다면, 예수님과 깊은 관계 속에 있었던 아내가 저보다 훨씬 더 믿음이 좋았다고 생각합니다.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사랑했다면, 이제는 눈으로 보면서 사랑할 겁니다. 하늘의 예루살렘에는 동서남북 문이 있다고 합니다. 저와 아내는 천국 가면 남대문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아내를 만나기 원하신다면 남대문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은혜로운 예배가 되도록 집례해주신 이수관 목사님, 찬양해주신 안수집사님들, 여러 사역자 분들 고맙습니다. 직접 찾아주시고, 온라인으로 참여해주신 많은 분들 감사드립니다. 아내의 임종이 가까울 때 음식으로 섬겨주신 자매님들, 그리고 같은 방에서 머물며 밤새 간호해준 길윤순 자매님 감사합니다. 나중에 남대문에서 만납시다”라며 감사의 인사와 소망을 전했다.

장례예배를 인도한 이수관 목사는 감사와 함께 코로나바이러스에 대한 당부의 말을 전하고 축도함으로 모든 예배의 순서를 마쳤다. 이날 예배는 모두가 흐르는 눈물을 간신히 참으며 고인의 뜻에 따라 축제의 장례예배가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비록 어렵게 참아내는 슬픔과 눈물이 있었으나 예배는 최혜순 사모의 바람대로 시종 은혜와 웃음과 소망이 가득했다.

한편, 24년의 투병 중에도 삶으로 신앙인의 자세를 보여준 故 최혜순 사모는 73세의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는데, 최영기 목사와의 금혼(50주년)을 1년 앞두었던 터라 주변인들이 안타까워했다. 그러나 장례예배 영상은 지금까지(7월 10일 현재) 10,446 views를 기록하며 많은 이들에게 계속해서 관심과 사랑을 받고 있다. 전체 예배는 아래 영상을 통해 볼 수 있다.

/ 미주=채공명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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