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牧會斷想] 원시시대의 옷을 벗어라
“원시시대의 옷을 벗어라”
아버지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세고 능력 있는 존재라 여긴 때가 있었다. 이때 나는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리를 백 퍼센트 신뢰하는 신앙인이었다. 하지만 논리와 과학이 내 머릿속에 침투해 생각을 간섭하기 시작하며 신앙생활에 균열이 생겼다. ‘그것’이 나를 원시인 보듯 했기 때문이었다. 난 추락하는 신앙을 회복하려 목청이 터져라 찬송을 부르고 뜨겁게 기도했다. 나를 세뇌시켜 신비를 체험하고 논리와 과학의 코를 납작하게 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허무함과 공허감만 커졌다. 그리고 누구에게는 신비를 허락하고 내게는 무반응인 하나님 존재에 회의가 생겼다. 동시에 신비를 경험했다고 하는 이들을 미개인 보듯 했다. 그러며 도덕적으로 거리낌 없고 희생과 봉사와 사랑을 실천하는 고상하게 명상하는 신앙인이 되려 하였다. 그런데 나를 “위선자”라고 일컫는 내면의 목소리가 가슴을 콕콕 찔렀다. 나는 다시 고독한 신사가 되었다.
신앙의 경지에 이른 듯한 이에게 궁금한 것들을 물었다. 믿기 어려운 것을 믿는 것이 자랑스러운 듯, 이분법적인 단순한 대답을 했다. 죽은 후에 갈 천국과 삶 가운데 받을 복에 기초를 둔 신앙고백이었다. 하지만 성령과 구원과 천국과 기도를 설명할 때 난 그의 입을 안쓰럽게 바라보았다. 암기한 걸 줄줄 외는 듯한 그가 초라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죄를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구원받는다고 확신은 하는데, 부활 후 예수님이 어떤 모습으로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에 관한 질문에는 버벅거렸다.
교회 안에서 갈등과 다툼이 일어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논리 없는 신앙의 허술한 틈을 비집고 들어 온 이성에 기초하는 신앙, 구원에 초점을 맞추려는 신앙, 신비적인 경험에 의지하려는 신앙, 철학적인 사고에 기반한 신앙,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는 신앙, 윤리와 도덕에 초점을 맞춘 각기 다른 신앙들이 진리인 양 자기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하여 인정받고 싶은 욕구와 자존심에 사로잡힌 이기심이 끼어들어 서로를 의심하고 무시하고 미워하고 질투하며 다툼을 부채질한다. 이런 와중에 사적인 욕심이 일으킨 불의를 사랑으로 감싸며 혼돈스럽고 무력한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 예수님, 십자가, 구원, 천국, 기도, 사랑, 교회, 성경 등의 신앙 용어들을 논리 정연하게 정의해야 하는 때가 되었다. 그리고 변화를 받아들여 “원시시대의 옷을” 벗을 때에야 기독교의 밝은 미래가 있다. 민간인의 우주여행이 이루어지고 AI가 인간 두뇌를 능가하는 고도로 발전하는 과학이 세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는 현대에 더더욱. 이를 위해 기독교 신앙의 핵심 용어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
‘구원’은 죽어서 천국으로 들어가는 것만이 아닌 어둠에서 빛으로 나가는 것이다. 생명 없는 존재가 생명 있는 존재로, 지혜 없는 사람이 지혜 있는 사람으로, 사랑의 품을 모르는 사람이 사랑의 품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다양한 것들: 감정, 돈, 명예, 남의 눈, 권력, 미신 등에 노예 된 영혼이 창의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는 자유한 영혼이 되는 것이다.
‘천국’은 죽어서 가는 곳, 구원받은 자들을 위하여 예비해 놓은 슬픔이 없고 기쁨 가득한 곳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리가 이루어지는 곳, 하나님의 지혜가 임하는 곳, 하나님의 사랑이 임하는 곳,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곳이다.
‘기도’는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 필요를 구하는 것만이 아닌 인격적인 만남이요 호흡이다. 즉 가슴속에 있는 모든 것들; 아픔, 갈등, 목마름, 상처뿐만 아니라 감사, 기쁨, 아이디어, 품은 꿈을 내어놓는 가운데 치료받고, 새 힘과 지혜를 얻고, 사랑과 진리의 음성을 들으며 소통하는 행위이다.
이러한 신앙용어를 이해할 때 문화와 역사 속에 녹아 있는 진리와 사랑을 문학의 다양한 장르를 빌어 우리들에게 전하는 성경을 해석할 수 있다. 그리고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는 낮아짐, 희생의 섬김과 하나님이 인간을 동등하게 여기는 사랑과 함께 진실과 지혜로 처신하는데 나타나는 능력으로, 구원을 이루시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를 알아야 그를 사랑하고 닮게 된다. 다시 살아나셔서 세상과 내 안에 영으로 계시며 때로는 양심으로 말하고, 때로는 눈물 흘리게 하시고, 부르짖게 하시고, 치료하시며, 역사와 자연 속에 숨겨져 있는 진리를 깨닫게 하시며, 때로는 자유한 영혼이 마음껏 창의력과 상상력을 발휘하게 하시는 예수를 목자, 상담자, 치료자, 지혜자로 부르는 것을 알고 고백할 때 예수와 인격적으로 교제하는 신앙인이 된다.
원시시대의 신앙상태에서 ‘감사하라, 봉사하라, 믿어라, 전도해라, 구해라’ 그러면 구원받고 복 받는다는 외침은 오히려 교회를 쇠퇴하게 하는 원인이 된다. 이제는 다양한 신앙용어의 개념을 분명하게 이해해 친밀한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교제가 이루어지게 해야 할 때다. 진리와 사랑과 함께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창의력과 상상력을 마음껏 발휘하며 인간의 행복과 가치를 높이는 길을 제시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