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단상 牧會斷想] 콩깍지와 영성
지준호 목사(헌츠빌 은퇴, 자유기고가)
콩깍지와 영성
얼굴을 보이면 언제나 열어 주던 핸드폰이 암호를 입력하라고 자판을 띄운다. 어리둥절하다, 어처구니없어 너털웃음을 웃는다. 눈꺼풀 수술한 직후 폰이 내 얼굴을 몰라본 것을 알고서…… ‘겉 사람이 아니라 속 사람으로 인증할 시대도 오려나?’ 상상하다 회의가 든다. 변덕이 심해 “갈대와 같다”고들 하는 마음인데, “그것이 그것이지” 궁상을 떨다 겉 사람과 속 사람을 오묘하게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본다. 쳐진 눈꺼풀이 쌍꺼풀로 변하여 보다 넓은 세상이 보이는 시원함을 느끼며……
인간은 생존을 위해 이기적인 본성을 간직하고 태어나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에 고유한 성격과 재능을 조화시키며 나름의 삶을 산다. 이러며 경험하는 행복하고 상처받는 모든 일을 의식과 무의식 창고에 저장한다. 이러는 동안 몸은 사춘기를 거쳐 청년으로 성장하며 페넬에 티라민, 암페타민, 옥시 토시의 화학 물질을 만들어 눈에 콩깍지를 씌운다.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과 정의를 위해 희생도 마다하지 않고 이성까지 거역하는 열정적인 삶을 살게 지원한다. 불평등을 낳는 돈과 학벌과 지위의 편견을 극복하며 짝을 이루고, 불의에 맞서 싸우며 역사를 하나님의 의도대로 이끄는 아름다운 이야기를 세상에 남길 수 있도록….
그러나 이렇듯 존재 가치를 높이는 삶으로 만들던 화학 물질은 나이가 들며 쇠해 버린다. 이때 눈에 씌워졌던 콩깍지는 벗겨지고 숨어 있던 의식과 무의식이 득세하고 얄팍한 꾀는 그 자리에 안착한다. 그리고 현명한 듯, 고상한 듯, 가면을 쓰고 약삭빠른 계산에 따라 연극하며 인간들은 산다. 하나님이 주신 고유하고 존귀한 자존감을 잃어버려 지질하고 비굴한 인생이 되는 줄도 모르는 채….
이처럼 하잘 것 없는 것들에 휘둘리는 우리를 하나님은 영성을 통해 내 안에서 코치하며 아름답고 가치 있는 인생이 되게 하시려 하는데…. 난 중력의 근원을 푸는 어려운 문제로 착각하고 특별한 사람들이나 누릴 수 있는 것이라 여겼다. 신비한 것을 깨닫고 특수 훈련받은 이들만 누리는 것인 줄 알고서…. 이런 나에게 한 날 “정직한 자는 하나님을 볼 것이요”라는 말씀이 숨쉬기처럼 쉬운 영성임을 일깨우신다. 누구나 공평하게 언제 어디서든 만나 주시는 분임을 신뢰하게 하시며….
이후로 난 홀로의 시간, 변화무상한 별의별 마음들을 시시콜콜 내 안에 계시는 하나님께 이야기한다. 그리고 시원하고 상쾌한 마음과 용기를 얻으며 상상력과 창의력을 누린다. 하지만 때때로 외로운 갈등을 겪는다. 말씀에 따르려니 손해날 일과 자존심 상하는 일, 부끄러운 일, 안 될 것 같은 고정 관념과 화해의 손을 내밀 때 거절당할 두려움이 일어서…. 이때 어리석게 살았던 후회스러운 일들까지 타인이나 운명의 탓으로 돌리며 우울해진다.
이러던 한 날 “영성은 싸움에서 이기는 것까지”라는 생각이 동튼 아침 눈뜬 것처럼 선명해진다. 부끄럽고 미안한 마음을 고백할 때 영혼의 자유 가운데 진리 안에서 공감되는 친구가 늘어나고, 손해날 일을 실천에 옮기는 바보스러운 말과 행동이 신뢰를 깊게 해 함께할 동지를 얻게 되는 진리가 이해되며…. 그리고 영성이 깊어져 돈도 명예도 자존심도 하찮게 여길 수 있는 신비한 능력이 새롭다. 몸에 화학 물질로 콩깍지가 쓰인 눈 이상의 힘을 느끼며….
영성에 의해 사랑을 나누며 행복해지는 양은 커지고, 실체를 보는 눈이 밝아져 지혜로운 선택과 결정하는 능력으로 삶의 존재 가치를 높이게 하는 하나님의 지혜가 사랑스레 보인다. 이러한 선한 콩깍지를 우리 눈에 씌우시려 때로는 홀로 있게 하시는가 보다. 인간관계를 하다 외로움을 느끼게 하면서…. 그러나 내 안에서 말씀하시는 분과 교제하며 내 안과 밖에 있는 가짜 뉴스와 선한 탈을 쓴 못된 콩깍지와 하나님이 주신 선한 콩깍지가 분별이 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4차 산업과 글로벌화되는 시대를 대면할 용기와 지혜도 생기며…. 감정을 뜨겁게 하고 마음을 빼앗는 약삭빠른 프로그램에 머무르게 하는 못된 콩깍지를 벗기고 영성을 높이는 교회와 가정에서 드려지는 예배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