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탐방] 아름다운교회(고승희 목사, sCA)
“제 꿈은 ‘동네 이장님’같은 목사”
9명 남아있던 교회에서, 아둘람 굴의 400 용사같은 출석장년 500명 교회로 성장한 배경
본보는 지난 2월 국내선교부 ‘건강한 교회 컨퍼런스’에 참석, 취재하는 동시에 컨퍼런스의 저녁집회가 열렸던 아름다운교회와 그 교회 담임 고승희 목사를 주목하게 됐다. 대형교회이거나 화려한 교회는 아니었지만, 건강하고 견고한 교회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다. 고승희 목사는 소위 엘리트 출신 목사였지만 ‘동네 이장님’ ‘쌀집 아저씨’ 같은 느낌을 주었으며, 그에 대한 교인들의 전폭적인 신뢰, 근래에 보기 힘든 성도의 헌신을 엿볼 수 있었다. 고승희 목사를 만나서 교회의 이야기를 들으므로 건강한 아름다운교회를 소개하는 한편, 건강한 교회의 특징을 소개한다.
< 편집자 주 >
심) 목사님 우선, 우리 교단에 목사님을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서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저는 한국에서는 신앙생활을 안 하다가 가끔가끔 아내를 따라서 교회에 한두 번 나가보기도 했으나 회사에서 유학을 다녀오라고 해서 유학을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장인어른께서 유학 마치고, 회사로 가지 말고 학교로 오라고 하셔서 회사에 사표를 냈고, 시작은 회사로 유학이 됐는데 사표를 내고 유학을 왔습니다. 회사에서 보내줄 때는 동부로 가려고 했는데 장인어른의 후원으로 공부를 해야 해서 등록금이 좀 싼 곳으로 알아보다가 텍사스 A&M이란 곳으로 갔습니다. 경영정보학을 하면 장학금을 준다고 해서, 전공을 경영정보학을 전공했고 얼마 전에 돌아가신 김바울 목사님과 같은 학교를 다녔고 김바울 목사님이 처음 개척한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처음 시작하게 됐고, 박사과정도 김바울 목사님이 갔던 미시시피스테이트대학에서 경영정보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박사학위 논문을 내면서 이제 신학교를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LA로 왔습니다. 결정은 아직 못하고 LA로 와서 김바울 목사님이 개척한지 2년 됐던 교회에서 전도사로 왔습니다. 침례교 신학교는 떨어지고, 탈봇은 안가고 할 수 없이 풀러에 갔습니다. 풀러에서 M.Div를 마쳤는데 풀러에 들어가기 전부터 김바울 목사님이 현재 아름다운교회, 그때는 로렌하이침례교회였는데 김바울 목사님이 인터림을 하고 계시다가 저보고 이 교회를 가보라고 해서 왔습니다. 제가 이 교회에 오는 게 맘에 안 들고, 아직 신학교도 안 들어간 사람이 담임 전도사로 온다고 하니까 원래 작은 교회였지만 다 떠나고 9명 남아있었습니다. 그중에 한분이 저희 교회 비서로 섬기고 있는 분입니다. (채: 사라 박 간사님 말씀이시죠?) 네 원래, 사라 박 간사님은 직장에서 일하던 분인데 제가 7년 전에 안식년을 가면서 아무래도 교회를 잘 알고 있는 분이 교회 행정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해서 받던 월급 절반만 받고 교회로 들어와서 섬기고 있습니다. 그렇게 이 교회를 시작해서 이제 24년이 됐습니다.
심) 목사님께서 예수님을 믿게 된 계기, 사건이 있습니까?
= 유학을 온 것이 결정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유학을 와보니 제가 생각했던 미국과 전혀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고 텍사스로 온 것이 도움이 됐습니다. 워낙 넓은 평야에 서 있으니 인생이 굉장히 초라해 보인다는 것을, 그전에는 머리로 알았는데 사람이 정말 개미새끼만하고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들도 느껴졌습니다. 한국에서는 그래도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살아왔는데 미국에 와서 언어가 달라지니 완전히 바보가 된 것입니다. 거기다가 신앙의 선배들이 교회를 섬기는 모습을 보니까 어떤 이해관계가 아니라 진심으로 섬기는 모습을 보면서, ‘저 힘이 어디서 나올까’ 그런 생각을 하면서 그들이 예수를 믿고 변화된 것이라고 하는데 그게 거짓말 같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가 어쩌면 영적인 소경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되고, 학생교회 부흥회에 참석했다가 예수님을 믿게 돼 신앙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심) 목회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십니까?
=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보게끔 은혜를 많이 주셨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말씀을 읽게 됐고, 그전에는 읽으면 이해도 안 되고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는데 때로는 말씀을 놓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을 정도로 많이 읽게 됐습니다. 그러다가 학생교회였고 목사님도 학생이었으니까 소그룹모임 가정교회 모임을 하면 목자가 설교와 식사 등 모든 것을 다 준비해야 됐습니다. 교재를 주셔서 한 것이 아니라 본인들이 만들어서 설교를 하든 교재를 만들든 사서 하든 준비해서 해야 했습니다. 2주에 한 번씩 모였는데 말씀준비를 하면서 조금씩 훈련이 된 것 같습니다. 저희 교회에서 섹쉬얼리티시리즈 CD보다 더 많이 나간 CD가 믿음입니다. 그 믿음 성경공부를 사실 학생교회 때 만들었던 것입니다. 예수 믿고 3년 정도 지났을 때 국제결혼하신 분들의 소그룹을 맡기셨는데 학생교회와는 또 달라지니까 이분들을 어떻게 해야하나 고민하다가 이분들이 금요일에 열심히 기도하고, 토요일에 고스톱을 치다가 주일날 교회를 못 오시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분들이 어떻게 하면 교회를 올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로이 목사님이 쓰시고 전광훈 목사님이 번역한 ‘찬양과 경배의 명령’이라는 지금은 절판이 된 그 책을 읽다가 믿음의 싸움이 생각의 싸움이라는 것을 깨달아서 믿음 성경공부를 만들어서 국제결혼 하신 분들과 성경공부를 했는데 이분들이 생각을 지키기 시작해서 주일에 교회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조그마한 가정교회였는데 나중에는 거의 학생교회만큼 커졌습니다. 저희 학교에서 1시간 정도 떨어진 곳이어서 더 안가기로 하고 새로운 담임목사님을 모시게 됐습니다.
저희 아내가 자궁에 혹이 있어서 아기를 못 낳았는데 4년을 기도했을 때 아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이 박사과정 끝날 때 두 살 반이 됐는데도 아이가 말을 안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앞에서 말한 그 가정교회를) 그렇게 철수하면서 하나님께서 말씀의 은혜를 주셨는데, 아들이 똑똑한데 말을 안 하는 것을 보면서 ‘은혜를 줬는데 말을 안 하고 있는 모습’이 나의 모습이라는 것으로 깨닫고, 그것이 하나님께서 말씀을 전하는 사역을 하라고 주신 부르심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 외에도 ‘석사과정을 끝내고 신학교를 갈까?’하고 아내에게 물었더니 아내는 반대를 했습니다. 그래서 저를 부르시려면 아내를 통해 불러달라고 기도했더니 사모가 어느 날 헷가닥하더니만 본인이 신학교를 가자고 하기도 하는 등 여러 가지 확증이 있었습니다. 저희 담임목사님 누님이 (저에게) 목회하게 될 거라고, 한국에 가면 신앙생활도 힘들 거라고 하면서 LA에 가면 담임목사가 될 거라고 했습니다. 그때 저는 서리집사였고, 신앙생활한지 7년 밖에 안됐고 LA에 700~800명의 목회자가 목회지를 찾고 있다고 들어서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을 했지만, 온지 이틀 만에 이 교회의 담임목회자가 되면서 하나님께서 여기에 밀어 넣으셨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그래서 이 교회에 왔을 때 어떻게 떠날까만 고민했습니다. 비즈니스에서 말하는 ‘Exit Plan’이라고 하는 들어올 때 출구전략을 가지고 왔습니다. 재정이 파산되게 하거나 교인들이 다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한 분은 유학생, 한 분은 할머니였고 박사라 간사 가정만 떠나면 문 닫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교회보다 좀 더 어려운 교회가 나오면 간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미국 침례교단에서 여기 DOM이 있었는데 한국침례교 목사님들 중에 영어로 대화하는 것이 어려우니 소통을 도와달라고 하면서 지원을 해주겠다했는데 지원을 안 받았습니다. 교회가 뱅크럽시를 못하게 되기 때문이죠. 한 달 정도 렌트비를 못 내고 두 달째 못 낼 거 같아서 이제 파산을 하자고 했는데 지나가던 사람들이 몇 천불씩 십일조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몇 번 경험하면서 파산을 못했고, 사라 집사님 가정도 여전히 남아있었습니다.
사실 저를 오라는 곳은 많이 있었습니다. 한국도 그렇고 미주 안에서도 그렇고, 한국도 이름만 대면 알 수 있는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저는 어려운 곳에서 목회하자는 생각이어서) 그런 곳은 교인들도 안 떠나고, 교회가 파산할 일도 없을 것 같아서, 우리 교회가 제일 힘들 것 같아서 남아있었습니다. 지금은 우리 교회가 제일 쉬울 것 같습니다. 집사님들이 크레딧을 많이 주고, 이제 눈빛만 봐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는데, 60이 다 되어가니까 지금은 이제 오라는 데도 없고 여기 있어야겠다고 말합니다.(웃음)
심) 목사님께서 컨퍼런스 첫날인가 3년 동안은 거의 변화가 없었다고 하셨는데, 그 이후에 어떤 목회의 터닝 포인트가 있었습니까?
= 한 가정이 늘어서 12명이 되기는 했습니다. 그런데 10명 정도 교인이 되면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냥 가만히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이 방문하는 것밖에 없습니다. 그때는 몰랐는데 몇 가지 도움이 된 것이 있었습니다.
LA한인침례교회에 신학교가 있습니다. 처음에는 박사학위가 필요하다고 했는데 티칭이 필요하다고 해서 실천신학으로 해서 ‘Church Administration’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교단신학교가 문을 닫는다니까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가니까 4명이었습니다. 4명 이하가 되면 클래스가 취소되는데 나중에는 12명 정도 됐습니다.
그 다음 학기에 학감에게 연락이 와서 갑자기 구약을 가르쳐야한다면서 내일이 개강인데 구약교수가 갑자기 못하게 됐다는 것이다. 교수를 구할 수는 있으나 내일이 개강인데 교수를 구해야한다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고해서 모세오경을 가르치게 됐습니다. 그러다 구약2를 가르쳤습니다. 학감이 또 부르더니 공부를 좀 하라는 말을 하면서 다른 과목을 줄테니 열심히 해보라고 해서 신학교 커리큘럼 중에 음악만 빼고 다 가르쳤습니다. 20여 과목을 가르친 것 같습니다. 박성근 목사님은 원래 계시록을 다른 사람이 가르치도록 허락을 안 합니다. 그런데 그 계시록까지 다 가르쳤습니다.
그리고 한 22년 정도 됐는데 풀러를 다닐 때 친구 목사님이 선교사님이었는데 추수감사절에 식당들이 문을 다 닫는데 쓸쓸하니 점심을 주라고 해서 초청을 했는데 2명, 4명 … 11명이 됐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집은 안 되겠다고 여선교회에서 물어보니 하겠다고 해서 선교사님들이 한 40명이 왔습니다. 예배드리고 식사하고, 자기사역을 나눴는데 그렇게 해서 그것을 매년하고 있습니다. 이번 행사 둘째 날 먹은 것보다 더 잘 먹습니다. 안식년 나와 있는 선교사님들이 대부분이신데 지금은 한 100명 정도 모이십니다. 예배드리고 간증하고, 식사를 하는데 집사님들 비즈니스에서 도네이션 받은 선물도 드렸습니다. 어느 날 협의회 망년회를 갔는데 크리스마스 카드에 돈이 100불 있는데 되게 기분이 좋았습니다. 그래서 내년부터는 선교사님들께 100불 드리자고 했는데 내년까지 안가고 바로 그해부터 100불씩 드렸습니다. 그리고 제가 평신도일 때 옛날 구역장을 하셨던 분을 찾아가서 선교사님들 건강검진 좀 해달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거의 100명을 건강검진을 다 해주었습니다. 지금은 오바마케어나 선교사님들도 보험이 있지만 그때는 그런 것이 거의 없었습니다. 때로는 큰 병들도 잡을 수 있어서 열매가 좋았고 감사했다. 그렇게 한 15년 정도 해오고 있는데 보험이 있는 분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신청은 줄고 있습니다.
심) 목회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목회의 비결이 있다면, 고승희 목사님이 24년 내 목회를 돌아보면 이것이고, 앞으로 이렇게 갈 것이라는 것이 있습니까?
= 사실은 별로 없습니다. 저는 한 번도 부교역자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이 교회가 첫 교회이고, 어쩌면 마지막 교회가 될 것 같은데 그렇다고 선배 목사님의 목회현장을 볼 수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 저 혼자 끙끙거리면서 24년까지 끌려왔는데 모두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한 가지 좋은 것은 어떤 고정관념이 없었다는 것이 좋았던 것 같습니다. 교회를 다녀본 적이 없고, 7년 다닌 교회도 학생교회여서 열정은 있는데 어떻게 조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잘 몰랐습니다.
심) 교육, 선교, 훈련이나 리더십 쪽에서 목회에 대한 도움이 됐던 그런 것이 없었나요?
= 우선 선교사님들을 22년 동안 잘 섬기고, 신학교에서 열심히 강의를 했더니 주변에서 많이 추천을 하신 분들이 있었습니다. 오신 분들에게 나중에 우리교회에 어떻게 오게 됐는지 물어보니 선교사님이나 강의를 들었던 분들이 추천을 했던 경우가 많이 있었던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그래서 선교는 교회가 일찍 눈을 뜰 수 있게 됐습니다. 왜냐하면 선교사님들이 매년 오시면 간증과 짧은 사역보고를 하십니다. 물론 오시기 전에 모니터를 합니다. 그래서 몇 분을 새벽과 수요예배 때 모셨기 때문에 선교사님들이 참 많이 오셨습니다. 1년에 40-50분은 다녀가셨습니다. 그분들이 새벽이든 수요예배든 도전해주시니 교인들이 선교에 빨리 눈을 뜨게 됐습니다.
성경공부는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은사가 그것이었습니다. 미국 일반대학에서 통계학을 가르쳤습니다. 그런데 미국학생들이 통계학 되게 싫어하잖아요. 제일 싫어하는 과목을 안 되는 영어로 가르쳐야 하니 죽겠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걸 잘 가르쳐서 평가를 잘 받아야 다음 학기에 가르칠 수 있고, 학생을 잘 가르쳐야 학교에서 등록금도 절감되고 생활비도 나오니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불만 없이 잘 가르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그래서 내용물을 어떻게 개발하고, 딜리버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님께서 많이 가르쳐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신학교에서 가르칠 때, 왜 자꾸 다른 과목을 주었는지 생각해보니 학점을 잘 주기도 했지만 학생들이 등록을 많이 했습니다. 그런 것이 저에게도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저희 교회 제자훈련 프로그램 같은 경우도 다 독자적으로 개발을 했습니다. 아직 출판은 안했지만 사랑의교회 제자훈련교재보다 뒤지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심) 어제도 말씀하셨는데 새신자반 교재도 여러 분들과 함께 의논해서 만들어 30교회 정도가 쓰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아름다운교회가 목사님께서 자랑하고 싶은 훈련교재나 사역의 내용이 있으시면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 아직 교재가 다 교재화 되지는 않았으나 내용은 정리가 되어있습니다. ‘악의 뿌리’ 책을 냈던 넥서스 크로스에서 제자훈련 교재와 책, 교재의 티칭 매뉴얼 등을 12과목 7주 과정 36권을 낼까하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타당성조사는 끝났다고 보고, 신뢰성시험(Reliability Test)를 하고 있습니다. 저는 안 가르치고 부교역자들이 가르쳤을 때도 같은 결과가 나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부분을 네 번째 기수가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직은 약간 어렵지 않나 싶어서 조금 수준을 낮출까도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중보기도반도 월요일에 계속 하다가 하나님이 은혜를 주셔서 현재는 월요일부터 주일까지 7개 팀이 매일 돌아가고 있습니다.
심) 목사님 교회에서 임상실험을 해서 나오는 새신자반 교재, 양육 및 훈련교재가 나오면 교단 교회들에게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저도 목회를 34년 했는데 지금도 새신자훈련을 위해 교재를 찾아보면 별로 없습니다.
= 다른 교회 장로로 계시던 분들도 BCC(Beautiful Church Citizenship Class)를 듣고 나면 거의 신앙생활을 잘 못했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새신자반’이라고 하면 새신자가 아닌데 그걸 들어야 하냐고 해서 ‘BCC’라고 하니까 들어옵니다. 한 사람은 BCC를 듣더니 한참 울길래 이유를 물어보니 그동안 신앙생활을 잘못한 것 같다면서 자기 아버지가 군인이고, 본인이 경찰이다 보니 3년마다 임지가 바뀌니까 새신자반만 스무 번째 한다고, 그래서 (그동안 안 했는데) ‘진작했으면 좋았을 텐데’하면서 아쉽다고 했습니다.
심) 목사님이 보시기에 이 시대의 교회의 문제점, 목회자의 시대적 사명이 있다면 무엇이 있다고 보십니까?
= 예수를 안 믿을 때도 목사님들을 봤을 때 뭐랄까요,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속이 다르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이상하게 제가 만난 분들이 그랬던 것 같습니다. 예를 들면 설교할 때의 톤과 집에서 자녀들과 말하는 톤이 다르다는 것이 바더가 됐습니다. 그래서 목회할 때 목사와 성도들의 벽이 낮아져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평신도라는 말이 싫었습니다. 한쪽은 귀족계급, 한쪽은 평민계급같은 가톨릭 적인 이분법적인 부분이 많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희 교회는 침례교회라는 장점이 있기도 하지만 성도들이 모든 것을 많이 감당합니다. 이번 행사도 알아서 성도들이 다 준비한 것입니다. 추수감사절이 끝나면 새벽설교는 우리 집사님들이 다 합니다. 우리는 간증설교라고 말하는데 한 해 동안을 말씀에 비추어서 간증설교를 하게 됩니다.
(심: 그러다보면 교인들 중에 목회자로 나오는 분들이 많지 않나요?) 네 많습니다. (얼마나 있으신가요?)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지금 주일학교, EM에서 사역하는 분들이 다 우리 교회에서부터 커서 사역을 하는 분들입니다. 게이트웨이신학교에서 가끔 특강을 합니다. 블레어 클래스는 25명이 최대정원인데 13명인가 14명이 저희 교회 출신이었습니다. 많은 목회자들이 일어났습니다. (심: 시대적인 사명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말씀드린 것처럼, 목회자와 교인들의 담을 낮추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요예배에도 정장을 입지 않습니다. 제가 항상 강조하는 것은 “동네 이장님 같은 목사”의 모습입니다. 저는 ‘동네 이장님 같은 목사’가 제 꿈이기 때문에, 집사님 댁에 갈 때도 ‘갑니다’의 노티스도 없이 문 열고 갑니다. 아침에 산보하다가 들어가서 아침도 먹고 그럽니다.
아름다운교회는 아둘람의 400인같이 억울하고, 원통한 이들의 안식처
“우리 목사님은 서울대, 텍사스 A&M 박사출신 이장님”
심) 텍사스에 계실 때 교회는 침례교가 아니지 아니었잖습니까? 침례교 목회자가 되셔서 목회를 하는 것에 대해서는 어떠십니까?
= 김바울 목사님이 침례교였고 저를 보낸 교회도 침례교회여서 그렇게 됐는데, (웃음) 저희 교회가 장로가 없다는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왜냐하면 이민교회에서 내가 장로가 되어야겠다고 한 사람들은 저희 교회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직분 때문에 교회를 바꾸려는 사람들은 고려대상이 아니지 않습니까. 저희 교회는 사실 14-15년 동안 안수집사도 한 사람 없었습니다. 우리 교인들이 기분 나쁠지 모르지만 ‘성경의 기준에 맞는 안수집사가 있으면 추천하라’고 했습니다. 거기에 맞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많지 않다고 여겨졌는지 14년, 15년 동안 안수집사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에 직분을 바라는 사람은 아예 저희 교회에 오지 않았고, 저희 교회에 오는 분들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오셨기 때문에 그것이 교회를 굉장히 건강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은 저희 교회도 장로를 세울까 말까 생각중인데, 우선 목회자들을 개척할 수 있도록 도울 생각입니다.
(심: 교세는 지금 어떻게 되십니까?) 주일예배 인원이 장년의 경우 500명 정도가 됩니다. EM은 여기가 좁아서, 학교를 빌려 중고등부와 EM은 학교에서 예배를 드립니다. 저희가 젊은 층이 많아서 아이들이 많은 편입니다.
심) 이번에 강의 듣고 그러면서 숨은 진주를 발견한 것 같은 심정입니다. 소탈하게 전통적인 침례교 목사님을 보는 것 같아서 좋습니다.
= 저는 특별히 침례교 교리를 굉장히 좋아하고 있습니다. 아마 저희가 침례교 정신을 그대로 따라가고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회중정치에다가 위원회(커미티)체제로 끌고 가니까요. 전체 회의에서 커미티에게 위임하면 그대로 집행을 해가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 커미티를 만들고 있습니다. (심: 이번에 목사님을 만나면서, 아름다운교회 고승희 목사님께서 미주한인침례교회 교단에도 기여를 좀 하시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교단의 일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글쎄요, 교단에는 별로 안 나갔습니다. 그렇지만 원로목사님께서 부탁하시는 부분들을 섬기는 일은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제가 교회 바깥일은 복음방송이 처음입니다. 그것도 복음방송이 약간 급한 상황이라서, 누군가가 커버를 하지 않으면 존립 자체가 좀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레스큐팀으로 들어가 있습니다. (심: 복음방송을 어떻게 돕고 계십니까?) 저희 성도 중에 복음방송이 어려워서 헌금을 하려고 하는데 이왕이면 설교를 내보내면서 하면 좋겠다고 해서 설교방송을 내보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복음방송에) 들어가서 보니, 저희 성도 중에서 개인적으로 방송국에 내는 헌금이 꽤 많았습니다. 헌금하시는 리스트를 보다보니 아는 이름들이 꽤 많아서 감사했습니다.
심) 교단이나 저희 신문사에 하고 싶으신 말씀이 있으십니까?
= 특별히는 없습니다. 저는 뭐 다른 어떤 교단보다 건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말씀드렸지만 교협이나 교단이든 일체 관여하지 않는 지역 목사님 모임들이 있는데 분기에 한 번씩 연합기도회를 하고, 새로 오는 젊은 목사님들을 세워드리고 그러고 있습니다. 그 외에는 별로 하는 것이 없습니다. 복음방송도 관여를 안했는데, 복음방송이 Air fee가 12시간 쓰는데 한 달에 12만 5천불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사자고 생각해서 1,200만 불에 샀습니다. 복음방송이 잘 대출이 안됐는데 마침 은행에 담당하는 분이 친했는데, 장로님이라 크리스천 커뮤니티를 위해서 ‘네가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이때를 위함이 아니냐’라고 하면서(웃음) 대출을 부탁했습니다. LA는 복음방송의 영향력이 굉장히 큽니다. 담보물건도 없는데 제가 그쪽 전공을 했으니까 복음방송의 어카운트 프로시딩을 잡아주는 조건으로 제가 900만 불을 코사인을 했고, 어쩔 수 없이 이사가 됐습니다.
채) ‘악의 뿌리’라는 책을 즐겁게 잘 읽었습니다. 이슬람 관련 책도 쓰셨던데 현장에 계셨나요?
= 저희가 2,000년부터 라마단기간에 금식을 하면서 같이 기도를 했습니다. 라마단기간이라고 무슬림들이 30일 동안 금식하면서 기도하는 기간이 있습니다. 그때 저희도 같이 금식하면서 첫 3년 동안은 모슬렘 권의 선교사님 30분을 초청해서 새벽예배를 하게 됐습니다. 그러자 교회가 모슬렘 권의 중요성을 깨달았죠, 그래서 선교도 중국 서안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로 가는 길의 모슬렘들을 대상으로 선교의 역량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서안에서 시작해서 우르무치에서 교회개척하고 청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선교단체에서 우르무치 청년들 중에 예수 믿는 친구들을 조사해보니 거의 대부분 저희 칼랑영어캠프 출신이었다고 합니다. 큰 효과가 있었는데 지금은 우루무치를 끝내고 카자흐스탄에 3년째 들어가고 있습니다. FMB 주민호 선교사님과도 그렇게 연결이 됐습니다. 3년 전에 한국 침례교 총회 주관으로 대전에서 청년연합집회가 있었는데 제가 저녁에 3일을 섬기게 됐습니다. 학생들이 600명 정도 참석했는데 그때 다른 강의로 참석했던 주민호 선교사님이 청년집회를 카작(카자흐스탄)에서도 할 테니 지금처럼 해달라고 한 것이 인연이 된 것입니다.
채) (아까 질문과 다소 중복되지만) 예전에 ‘시대적 책임’을 많이 강조하셨는데, 이 시대에 계신 분으로서 다음 시대에 대한 어떤 책임이 있으신가요?
= 좋은 세상을 못 물려줘서 미안한 마음이 큽니다. 그래서 김바울 목사님이 살아계실 때 젊은 목회자 24가정을 초청해서 박성근, 김바울, 한종수 목사님과 함께 젊은 목회자들을 이큅(무장)을 하자고 했었습니다. 각 교회의 명예를 걸고 밥을 사라는 지령을 갖고 최고급 식당에서 식사를 하면서 좋은 강의도 마련하고 뜨겁게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참석하신 분들이 좋아했었습니다. 앞으로도 하려고 하면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채) 마지막으로, 교회탐방이니 교인들, 아둘람 굴의 400인 자랑 좀 해주십시오.
= 저희 교인들이 저보다 믿음 좋으신 분들이 많습니다. 저희 교회에는 진짜로 사업을 크게 하시는 분이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가 어떤 사역을 하고자 할 때 무리하게 하지는 않았지만 물질이 없어서 못한 적은 없습니다. 선교대회 할 때도 저희 교인이 120명 정도 됐을 때인데 전체 대회비용이 65만 불 들었습니다. 저희 집사님들이 35만 불 정도를 감당했을 것입니다. 그때가 저희 1년 예산이 30만 불일 때였습니다. 어떤 분은 집을 담보로 해서 대출을 받아 몇 만 불을 헌신하기도 했습니다. 구제헌금을 받아야할 분인데 자신이 평생 모은 거라고 하면서 현금 5만 불을 내기도 하는 분도 있었습니다. (심: 가치가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런 헌신이 나오는 거겠죠.)
< 성도 한 사람을 붙들고 목사님 어떤 분이시냐고 물었다. >
채) 고승희 목사님, 어떤 분이십니까?
= 저희 목사님은 말씀에 대한 인사이트에 하나님께서 주신 특별한 능력이 있으신 것 같아요, 말씀을 해석하는 능력이나 말씀을 적용하시는 게 좀 남다르신 것 같습니다. 우리 삶에 실제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을 터치하세요. 그리고 본인이 믿지 않는 삶을 사시다가 여기 유학을 와서 믿게 되셨기 때문에 믿지 않는 사람의 심정을 너무 잘 이해하시고,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어떻게 복음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지를 실제적으로 풀이해서 설명을 해주시니까, 복음을 들어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신선한 것 같습니다. 새롭게 사람들이 믿는데 많은 영향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성품이 굉장히 소탈하시고,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 너무 좋아하셔서 모든 일에 간섭하시는 것 너무 좋아하세요.(웃음) 심지어 부엌이라도 들어오셔서 같이 있으세요. 왜냐하면 사람들하고 같이 있는 걸 너무 좋아하시거든요. (채: 때론 좀 부담스럽지는 않으세요?) 아니요, 그렇지 않구요, 그래서 우리는 목사님을 ‘동네 이장’이라고 불러요. 이장님같이 아무데나 와서 너무 잘 어울리시고, 성도들 모여 있는데 와서 꼭 끼어 계시고 그러세요.
(채: 아름다운교회는 어떤 교회라고 생각하세요? 좋은 교회인가요?) 아휴, 그럼요. 음 … 저희 교인들은 특별히 뛰어나고, 그런 분들은 별로 없어요. 큰 재벌이라든가 그런 분들이 없지만 헌금이나 섬기시는 것을 보면 정말 최대로 하시는 것 같아요. 성경에 있는 것처럼 힘을 다해서 헌금하신다는 게 느껴져요. 그리고 성도 간의 간격이나 레벨의 차이가 없는 것 같아요. (채: 그럼 그렇게 힘에 지나도록 헌금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받은 은혜 때문이죠. 저희 목사님이 저희 성도들을 아둘람 동굴의 400인이라고 얘기하세요. 거기 모인 사람들이 빚진 자, 환란당한 자, 원통한 자들이잖아요. 우리 교회 성도들의 성향이 그렇다는 거죠. 그런 분들이 모여서 은혜를 받았으니까 그 은혜를 어떤 식으로라도 갚기를 원하죠.
/ 미주, 대담=심윤수 사장, 채공명 부장
사진 및 정리=채공명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