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화과나무 아래서](66) 함께 우는 공동체의 비밀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함께 우는 공동체의 비밀
몇 년 전 한국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북극 툰드라 지대에 서식하는 늑대들의 혹독한 겨울 생존기를 방영해 큰 울림을 준 적이 있다. 1년 중 7개월 이상이 얼음과 눈으로 덮이는 툰드라의 겨울은 모든 생명체에게 혹독한 시련이다. 대부분의 동물은 동면에 들고, 얼어 죽는 짐승들이 속출하여 먹이를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렵다. 이 절박한 생존의 기로에서 늑대 무리는 불필요한 에너지를 아끼며 극도의 신중함을 유지한다.
먼저 우두머리 늑대가 홀로 먹잇감을 찾아 나선다. 사냥감을 발견해 크게 짖으면 무리가 합세하여 공동 사냥을 펼친다. 그러나 사냥 실패가 거듭되어 대장의 어깨가 축 늘어져 돌아올 때, 동료 늑대들은 그를 비난하는 대신 유쾌한 울음으로 맞아주며 격려한다. 문제는 이 실패가 장기화될 때 발생한다. 무리 내부에서 우두머리를 향한 불만이 터져 나오고 그를 몰아내려는 움직임, 즉 ‘분열’이 시작되는 것이다. 최소 5마리 이상이 합심해야 하는 늑대 무리에게 분열은 곧 ‘다 같이 죽음’을 의미한다.
바로 이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 우두머리 늑대는 언덕에 올라 밤하늘을 향해 서럽고 긴 울음소리를 내어 뿜는다. 그러면 놀랍게도 그를 따르던 무리는 물론, 그를 반대하던 무리까지 차례로 그 처량한 울음에 동참하기 시작한다. 외로운 툰드라 벌판이 늑대들의 울음소리로 가득 차는 것이다. 한참을 그렇게 다 같이 울고 나면, 분열되려던 늑대 무리는 언제 그랬냐는 듯 지난날의 오해와 갈등, 상처를 털어내고 다시 우두머리를 중심으로 뭉쳐 사냥에 나설 단결력을 회복한다.
이 툰드라 늑대들의 울음은 오늘날 고독과 갈등속에서 휘청거리는 현대인들과 신앙 공동체에 날카로운 영적 통찰을 제공한다. 오늘날 우리는 타인의 고통 앞에서 얼마나 진심으로 함께 울어주고 있는가. 성경은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과 함께 울라”(로마서 12:15)고 단호하게 조언한다.
함께 울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차가운 머리의 판단을 내려놓고 가슴으로 마음을 같이하는 일이다. 바울은 로마서 12장 16절에서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머리로 사람을 바라보면 “저 사람이 저러니 고난을 당하지”, “다 자업자득이야”라는 교만한 비판과 정죄밖에 나오지 않는다.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높은 데 둔 마음’이요 ‘스스로 지혜 있는 체하는 비극’이다.
그러나 성경 욥기 38장 36절에서 하나님은 “가슴속의 지혜는 누가 준 것이냐”라고 물으신다. 여기서 ‘가슴’으로 번역된 히브리어 ‘투호트’는 문자적으로 ‘심장이 있는 곳, 깊은 속마음’을 가리킨다. 참된 지혜와 공감은 머리가 아닌 따뜻한 심장에서 흘러나온다. 뇌과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의 심장에는 뇌와 직접 소통하는 신경세포가 존재하며, 심장에서 뇌로 보내는 신호가 반대의 경우보다 10배 이상 많고 강하다고 한다. 심장에서 발생하는 전자기적 신호 역시 뇌의 신호보다 무려 5,000배나 강하여 주변 사람에게 전달된다. 결국 인간의 이성과 생각을 움직이는 것은 차가운 머리의 논리가 아니라 두근거리는 가슴의 진정성이다. 높은 곳에서 남을 평가하는 차가운 머리를 버리고 낮은 가슴으로 다가갈 때 비로소 함께 울 수 있는 역사가 시작된다.
더 나아가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까지도 축복하며 품을 수 있어야 한다. 바울은 “너희를 박해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롬 12:14)고 명한다. ‘축복하다’의 헬라어 ‘유로게오(eulogeō)’는 상대에게 하나님의 선한 복이 임하기를 간구하는 것이다. 즉 좋게 말하는 것이다. 축복하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니다. 좋게 말하자. 원수에 대해서 좋게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나아가 스스로 원수를 갚으려 하지 않고 오직 선으로 악을 이겨내는 거룩한 삶의 태도를 지녀야 한다. 나와 마음이 맞는 사람의 슬픔에만 눈물 흘리고, 나와 갈등 관계에 있는 이의 불행을 속으로 고소해한다면 그것은 세상의 이기적인 모임과 다를 바가 없다. 성경은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롬 12:20-21)고 촉구한다.
여기서 ‘머리에 숯불을 쌓아 놓는다’는 표현은 보복이나 형벌을 의미하지 않는다. 고대 동양 문화에서 불씨가 꺼진 가난하고 불쌍한 이웃을 위해 머리에 이고 갈 항아리에 따뜻한 숯불을 담아주던 사랑의 실천을 뜻한다. 나에게 악을 행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그가 위기에 처했을 때 도리어 불씨를 나누어주는 선을 베풀면, 어두운 원수의 마음도 깊은 인격적 부끄러움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녹아내리게 된다. 이것이 바로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무릎 꿇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승리 방식이다.
지금 혹시 우리의 가정이나 삶의 현장에서 마음이 갈라지고 절망적인 위기에 봉착해 있지는 않은가. 그 고통스러운 상황을 혼자 악착같이 견디려 하거나 서로를 향해 손가락질하며 머리로 비판할 필요는 없다. 때로는 힘겨운 현실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부둥켜안고 함께 눈물을 흘리는 것이 해답이 된다.
눈물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가장 아름다운 치유의 샘이요 희망의 샘이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역시 사랑하는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마리아, 마르다 자매와 함께 눈물을 흘리셨다(요 11:35). 이제 교만한 머리의 판단을 내려놓고 주님이 주신 따뜻한 예수의 심장으로 서로를 품어야 할 때다. 나를 힘들게 하는 자까지도 축복하고 선으로 악을 이김으로써 미움의 굴레를 끊어내야 한다. 이웃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안으며 함께 우는 성숙한 공동체, 그 진실한 눈물 위에서 묵은 상처가 치유되고 다시 일어설 거룩한 소망이 차오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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