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형석 목사의 예배 리모델링] 다음 세대를 향한 예배 신학의 재정립

예배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다음 세대를 향한 예배 신학의 재정립
2026년 새해를 맞이하며, 동료 선,후배 목사님 가정과 교회 위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넘치길 기도드립니다. 새해를 맞아, 여느 해와 마찬가지로, 우리는 다시 한번 예배 앞에 서 있는 줄 믿습니다. 목회자에게 예배는 선택 가능한 사역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교회의 심장이며 존재 이유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솔직한 질문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예배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그리고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이 예배가 다음 세대를 어디로 이끌고 있는가?
많은 목회 현장에서 다음 세대의 예배 이탈은 가장 큰 고민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그 이유를 시대 변화, 문화 차이, 디지털 환경, 집중력의 약화에서 찾고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분석은 일정 부분 타당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단지 ‘형식’이나 ‘세대 취향’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들 목회자에게는 보다 근본적인 질문이 필요하다 할 것입니다. 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 무엇을 가르쳐 왔는가? 그리고 누구를 보여주고 있는가?” 이 질문을 생각하며 다음의 논점들을 함께 생각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1. 예배의 중심은 여전히 하나님인가
오늘날 예배는 점점 더 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은혜가 되었다”, “감동이 있었다”, “오늘 찬양이 좋았다”는 표현들은 자연스럽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문제는 이러한 언어가 예배의 전부가 될 때 발생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예배가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응답이 아니라, 사람의 경험을 중심으로 구성된 종교적 콘텐츠로 전락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전에 칼럼에서도 언급했듯이, 사도 바울은 로마서 12장 1절에서 예배를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는 것”이라 정의하고 있습니다. 이는 예배가 단지 주일 한 시간의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전인격적 응답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예배관이 흔들릴 때, 다음 세대는 예배를 ‘선택 가능한 활동’으로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세대는 형식이 낡았기 때문에 예배를 떠나는 것이 아니라고 믿습니다. 그들이 예배 속에서 하나님의 실재와 거룩함을 경험하지 못할 때 떠나고 맙니다. 히브리서 기자가 말한 것처럼, 예배는 “경건함과 두려움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섬기는”(히 12:28) 자리입니다. 경외가 사라진 예배는 오래 지속될 수 없는 것입니다.
2. 다음 세대를 위한 예배 신학의 재정립
다음 세대를 위한 예배는 ‘젊은 예배’나 ‘현대적 스타일’로만 정의될 수 없습니다. 그것은 결국 어떤 하나님을 전하고, 어떤 신앙을 계승할 것인가에 대한 신학적 선택의 문제에 있다고 믿습니다.
성경은 신앙과 예배가 세대 간에 전수되어야 할 언약임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시편 78편 4절은 “우리가 이를 그들의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의 능력과 그가 행하신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설명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야기에 참여하게 하는 자리라고 다시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가 종종 다음 세대를 ‘고객’으로 대하거나, 예배를 ‘맞춤형 서비스’로 제공하려는 유혹에 빠진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예배는 타협의 산물이 아니라, 형성(formative)의 자리입니다. 다음 세대를 향한 우리 목회자들의 올바른 신학 재정립이 있을 때, 다음 세대는 예배를 통해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경외해야 하는지, 누구를 위해 살아야 하는지를 배우게 될 것입니다.
3. 목회자를 위한 실제적 제언
그리고 다음 세대를 위한 예배 신학의 재정립은 구체적인 목회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짧게 몇 가지를 제언드립니다.
첫째, 말씀 중심의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8장에서 에스라는 말씀을 “낭독하고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뜻을 깨닫게” 했음을 보게 됩니다. 다음 세대는 짧고 가벼운 메시지가 아니라, 자신들의 삶을 해석해 주는 성경적 세계관을 갈망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설교는 정보 전달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서게 하는 사건이어야 합니다.
둘째, 예배의 신학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들의 세대를 돌아보면 알 수 있듯이, 다음 세대는 왜 서서 찬양하는지, 왜 기도하는지, 왜 성찬이 중요한지 잘 모릅니다. 우리는 예배를 설명하지 않은 채 참여만을 요구해 왔을지도 모릅니다. 골로새서 3장 16절은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배는 교육의 장이기도 하다는 말씀입니다.
셋째, 세대 통합적 예배의 비전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예배가 기존 세대를 배제하는 예배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취향 공동체가 아니라 언약 공동체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하나님 앞에 서는 경험 속에서, 신앙은 전수된다고 저는 믿습니다.
넷째, 목회자 자신이 예배자임을 회복해야 합니다.
다음 세대는 우리들의 말보다 우리들의 태도를 봅니다. 목회자가 예배를 ‘인도하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먼저 무릎 꿇는 예배자일 때, 예배는 살아 움직이기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4. 2026년, 다시 예배 앞에 서며…
2026년을 여는 이 시점에서, 교회는 더 새로운 예배를 만들기보다 더 진실한 예배를 회복해야 합니다. 예배는 교회의 전략이 아니라, 교회의 신앙 고백이어야 합니다. 다음 세대를 위한 예배 신학의 재정립은 결국 우리가 어떤 교회를 꿈꾸는가에 대한 질문이며, 어떤 하나님을 다음 세대에게 전할 것인가에 대한 결단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요 4:23).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다시 예배자로 서야 할 줄 믿습니다.
목회적 적용을 위한 질문
- 우리 교회의 예배는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형성하고 있는가, 아니면 소비하도록 길들이고 있는가?
- 예배의 각 요소(찬양, 기도, 말씀, 성찬)가 분명한 신학적 의미 안에서 연결되어 있는가?
- 다음 세대를 위해 예배를 바꾸기 전에, 예배에 대한 우리의 신학은 충분히 성찰되었는가?
- 나는 인도자로서가 아니라 예배자로서 강단과 예배 자리에 서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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