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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56) 나의 소망을 넘어, 주님의 소망으로

[무화과나무 아래서](56) 나의 소망을 넘어, 주님의 소망으로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나의 소망을 넘어, 주님의 소망으로

만약 여러분의 인생에서 광야와 같은 거친 길을 매일 걷고, 매일 반복되는 일상 때문에 같은 곳을 맴돌고 있는 것 같고, 때로는 도태되고 있는 것 같다면 신발을 벗고 하나님의 임재를 구하라. 타들어가는 태양 아래서 시들어가는 꽃 같다면 임재를 갈구하라. 주님의 임재는 저녁에 살며시 내리는 이슬과 같이 우리에게 임할 것이다. 이스라엘은 건기와 우기가 있다. 건기 때에는 몇 달씩 비가 내리지 않는다. 그때 식물들은 타는 갈증으로 죽음을 경험한다. 태양의 불화살 같은 열기로 온몸이 타들어 가는 아픔을 느낄 것이다. 그때 가장 필요한 것은 갈증을 해결하는 물이다. 아마도 약간의 물기라도 주어진다면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태양이 이글거리는 그 때는 아무리 물을 부어도 다 증발되고 소용이 없다.

그럼 하나님께서 언제 갈증을 해결해 주시겠는가? 지쳐 쓰러져 있는 밤중에! 낙심하고 절망하는 새벽에! 하나님은 이슬과 같이 우리의 필요를 채운다. 그때 이슬로 새 힘 얻는 사람만이 한낮에 뜨거운 태양을 이길 수 있는 것이다.

광야와 같은 삶에서 약간의 이슬로 버티고 있다고 낙심하지 말라. 지금이 바로 주님의 임재를 경험하는 순간이다. 늘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절망하지 말라. 작년도 취업 준비하고, 올해도 같은 일 하고, 아니면 매일 같은 직장에서 욕만 먹고 있다고 낙심하지 말라. 하는 사업 마다 같은 결과라고 절망하지 말라. 인생에 큰 구멍이 난 것 같고, 구멍 난 타이어가 짐이 된다고 속상해하지 말라. 이슬과 같은 임재를 경험하고 다시 소망을 가져라. 비록 광야를 헤메더라도, 당신을 가나안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링컨 대통령은 이렇게 고백했다. “내가 실패할 때마다 마귀는 와서 나에게 ‘너는 이제 끝장이다’라고 말했지만 하나님께 기도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일에 도전하라’고 하셨다. 나는 마귀의 소리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더 귀를 기울였다.”

그렇다. 여러분도 다시 도전하라. 매일 부정적인 생각이 나를 사로잡아도, 나와 동행하는 주님을 기억하라. 매일의 삶에서 도전하고 체험하라. 그리고 그 첫 시작을 구멍 난 인생을 주님 앞에 내어 놓는 것으로 시작하라. 그러면 나를 사랑하는 그분의 임재를 삶으로 경험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분의 임재를 경험하려면 무엇보다도 ‘나의 소망’을 넘어서야 한다. 왜냐하면 나의 소망이 장애물이 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명보다 소망에 집중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오해할 수 있다. 나에게도 나의 소망을 이루는 것이 세상 무엇보다 중요한 때가 있었다. 아버지가 뇌졸중으로 쓰러지고, 가정 형편이 매우 좋지 않았던 20대 초반이다. 그때 나의 소망은 딱 한가지였다. ‘다윗과 같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이었다.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면, 하나님의 생각이 나의 생각이고, 나의 생각이 하나님의 생각이니, 나의 모든 기도 제목과 소망들이 척척 이루어질 것 같았다. 다윗처럼 명예와 부와 권력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다윗과 같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기도했다. 물론 합한 자가 된 후에는 나의 소망을 이뤄야지 하는 흑심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나의 기도와는 다르게 삶은 나아지지 않았고, 등록금과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살림은 어려워졌다.

그런데 얼마 후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에 대한 진정한 의미를 알게 되었다. 나의 처음 생각과 다르게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는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는 사람이었다. 인간적인 소망을 버리고 때로는 나의 욕망을 쳐서 복종시키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는 자가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다. 다윗과 같이 미친척하고 목숨을 구걸해야 하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바라보고, 일국의 왕이 되어 인생 최고의 순간을 맞이해도,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축복임을 깨닫고 겸손한 삶을 사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였던 것이다. 나의 소망 보다는 하나님의 뜻에 인생을 맞출 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는 것이고 그 후에 다윗과 같은 영광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마음에 자신을 맞춰가는 사람이 많지 않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자신의 소망이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주님을 떠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예수님이 계실 당시에도 마찬가지였다. 5,000명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지만, 골고다 언덕과 부활의 현장에 그들은 없었다. 처음 예수님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켰을 때는 왕으로 손색없고 너무도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이다. 예수님이 왕이 된다면, 더 이상 먹을 것을 위해서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었을 것이다. 병도 고쳐주고, 사랑을 베풀어 주니 더할 나위 없었을 것이다. 5,000명 모두 예수님을 통해 풍요로운 삶을 소망하였는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이 승천할 때는 500명만이 자리를 지켰다. 예수님을 통해서 잘 먹고 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소망이 부서졌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은 다 흩어진 것이다.

그래도 500명의 사람들은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다. 승천할 때 예수님은 500명에게 성령과 권능이 그들에게 임하고, 그들이 증인이 될 거라고 말씀하다. 또 예수님과 동행하던 흰옷 입은 두 사람은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라는 말을 남겼다. 아주 놀라운 광경 아닌가. 사실 이 정도 기적과 예수님의 유언이면, 500명 모두 성령을 받아야 정상이다. 그러나 오순절 마가 다락방에서 성령을 경험한 사람은 겨우 120명이었다.

수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기적과 병 고침, 부활과 승천을 보았지만, 그분과 같은 소망을 품은 사람은 오직 120명이었다. 주님의 재림과 성령의 오심을 확신한 사람이 겨우 120명이었다는 말이다. 세상의 소망을 품는 자는 많지만, 주님의 소망을 품는 자는 소수다. 그러나 이 소수의 사람들이 세상을 바꾼다. 주님의 소망을 품었던 120명의 사람들이 로마를 뒤집었다. 120명이 거대 제국 로마를 무너뜨리는 씨앗이 된 것이다. 이런 말이 안 되는 일이 주님의 소망을 품는 자들에게는 현실이 된다.

‘우리 교회는 숫자가 너무 적어요’

‘우리 부서는 사람이 없어서 짜증납니다.’

‘우리 집은 가난해서 안 돼요’

맞는 말이다. 우리 힘이 너무 적고, 너무 약해서 짜증이 나고, 때로는 뜻대로 되지 않는 현실 때문에 더 답답할 때가 많다. 그러나 12명의 제자가 세상을 바꾼 역사적 사실을 기억하라. 나의 소망이 아니라, 주님의 소망을 품을 때 당신은 역사를 만드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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