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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인화.박금님 선교사 부부의 남아공 행전] (7) 우리 식구

[박인화.박금님 선교사 부부의 남아공 행전] (7) 우리 식구
박금님 선교사 (남아공: IMB Team Associate)

하나님과 우리가 쓰는 남아공 행전 (7)

“우리 식구”

우리 가족은 8명이다. 나와 남편, 결혼한 두 딸, 사위들, 손자와 손녀이다. 두 딸은 오랜 세월 코 앞에 살았기에 언제든 만날 수 있어서 그 소중함을 제대로 느끼지 못하며 지내왔다. 남아공에 온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오는데, 제일 힘든 마음은 타지에서 느끼는 외로움이다.

그러나 선교를 왔다는 사람이 이런 생각을 하는 것도 사치한 마음 같아 누르고 지냈다. 무엇보다 남편이 신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영향을 주는 귀한 사역을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고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사역인지 알기에 나는 중요? 하지 않았다. 나는 좋은 내조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만 했다.

그런데 두 딸이 이곳을 방문하겠단다. 뜻하지 않은 놀라운 선물이다. 첫날 도착하면 무슨 음식을 해줄까? 갑자기 마음이 바빠져서 구매해야 할 재료들을 종이에 적으며 설레는 마음으로 행복하기만 했다. 남편과 출타했다가 집으로 돌아올 때면 딸이 전화해서 항상 묻는 말이 있었다. “엄마, 무슨 음식 to go해 놓을까? 순두부? 설렁탕?” 그러나 나는 엄마표 home made를 먹이고 싶다. 내리사랑이라고 하더니 그 말을 실감하며 슬며시 웃음이 난다.

드디어 두 딸이 내가 부탁한 한국 식품을 싣고 왔다. 미국에서 가지고 온 made in Korea는 충분히 만족할만하며 너무나 행복하기만 했다. 화장실 딸린 안방을 딸들에게 내어주고, 나와 남편은 거실의 소파 침대에서 잤다. 소파를 펼치면 침대가 되는데 중간이 푹 파여 있어 불편하기 때문에 그 사이에 담요를 돌돌 말아 평평하게 만들어야 했다. 그러나 나와 남편은 아무 불만도 불평도 없었다. 그저 아이들이 편안하게 지낸다면 그 이상 무엇을 바라겠는가? 딸들이 편안하게 지내는 것이 곧 우리의 편안함이니까.

일주일의 시간은 꿈같이 흘러갔다. 우리 가족은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몇십 년 전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목회 초창기, 식구 4명이 작은 자동차를 타고 다니며 뒤에서 재잘거리는 딸들의 이야기를 듣던 그때로 말이다. 남편은 IMB 동료 선교사님들과 아파트 매니저, 이웃들에게 딸들이 왔다고 자랑하며 인사를 나누게 했다. 신학교를 방문하여 학장과 만나 유익한 대화를 하고 스태프들을 만났다. 엄마, 아빠가 먼 외국에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궁금해하던 딸들은 우리의 생활 모습을 보고 나서 마음이 놓이고 안심이 된다고 했다. 일주일의 시간은 꿈같이 흘러갔다.

딸들 표 보약을 먹기는 했지만, 딸들이 떠난 후 며칠간 눈물샘이 터져 울컥거렸다. 빈자리가 너무 크다. 장성한 딸들인데 왜 이런 마음이 드는지 모르겠다. 아마 멀리 떨어져 있다는 거리감 때문일까? 친정엄마가 살아 계실 때, 한국을 방문하면 떠나올 때 아쉬워하시며 우시던 엄마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렇구나, 엄마도 이런 마음이셨겠구나….’ 다시 만날 날을 기약했다.

‘기다림이 소망이 되겠지?’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마음도 안정을 찾고 이제 눈물도 나지 않는다. 받아들이고 포기하고 또 그 가운데 깨닫고 배우는 게 있다는 것이 또 얼마나 감사한지.

나는 지금 아파트 식탁에 앉아 창밖에 우뚝 서 있는 산을 보며 글을 쓰고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엄마처럼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저 앞의 산처럼 변함없으시다. 비록 우리가 연약하고 죄인이 되었고, 원수가 되었을지라도(로마서 5:16-10),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우뚝 서 있는 산처럼 변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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