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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화과나무 아래서](53) 고침 받고 평안과 함께 미래로 나아간 여인처럼

[무화과나무 아래서](53)  고침 받고 평안과 함께 미래로 나아간 여인처럼

궁인 목사(휴스턴 새누리교회)

고침 받고 평안과 함께 미래로 나아간 여인처럼

12년 동안이나 저주받은 질병, 부정한 질병이라고 여겨지는 혈루병에 걸린 여인이 있었다. 오랜 투병 생활로 모든 것을 잃은 여인이었다. 가족도 부정한 여인으로 낙인찍힌 그녀를 버렸다. 병 고침을 위해서 가진 재산을 다 허비하였다. 마가복음 5장 26절에는 ‘많은 의사에게 많은 괴로움을 받았고,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 라고 기록되어 있다. ‘많은’ 이라는 단어가 두 번이나 기록된 것을 보면, 정말 병 고치기 위해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은 것이다. 그녀는 처음에는 재산도 꽤 있었던 것 같다. 그런데 성경은 ‘가진 것도 다 허비하였으되’라고 기록하고 있다. 치료를 위해서 모든 것을 쏟아 부었는데, 성과가 없었다. 가산만 탕진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존감도, 명예도, 가정마저 잃어버렸다. 부정한 질병이라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도 올 수 없었다. 그러나 그 여인의 고난은 질병에서 시작되었지만, 그 결과는 사회로부터 완전히 격리되는, 누구와도 인간다운 교제를 나눌 수 없는 소외된 삶이었다. 질병 때문에 절망했고 주변에 사람이 없어서 외로웠다. 그렇다. 그녀의 문제는 외로움이었다. 인생의 고난을 홀로 감당해야 하는 인간 본연의 문제, 바로 외로움… 철학자들이 말하는 세상 속에 철저히 혼자 던져진 존재인 한 여인… 그때 예수님을 알게 된다.

병 고치기 위해서 그녀는 목숨을 걸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진다. 그곳에는 이 여인 말고도 많은 사람들이 뒤엉켜 서로 밀치고 있었고, 너도나도 예수님을 만지기 위해서 노력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만졌을 것이다. 그런데 오직 그녀만 치유와 회복의 기적을 경험한다. 왜일까? 바로 남들과 다른 확고한 믿음과 목숨 건 도전 때문이다. 그 증거는 마가복음 5장 28절에 있다.

‘그의 옷에만 손을 대어도 구원함을 받으리라 <생각함일러라>’

여기서 <생각함일러라>라는 표현은 ‘그분이 나를 고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고 어쩌다 한번 생각했다는 것이 아니다. 원어에는 ‘지속적으로 생각하고 말했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 ‘예수님은 나를 고칠 수 있다. 나를 고칠 수 있다’라고 항상 되뇌면서 기도했다는 것이다. 모든 삶의 순간에서 기도하고 결단한 것이다.

예수님도 누군가 자신을 만지고 고침을 받은 것을 알았다. 그래서 뒤돌아서서 누가 만졌는지 묻는다. 그때 사람들이 존경하는 예수님을 만진 그녀는 부정한 질병을 숨기고 사람들과 같이 있었기에 너무도 두려웠을 것이다.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만진 분이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 앞에서 더욱 두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 여인을 예수님은 “딸아”라고 부른다. 진짜 딸을 부르는 것처럼 “내 딸아, 네가 정말 아프구나, 네가 정말 힘들구나” 하신다. 얼마나 눈물 나는 대목인가. 부정한 질병으로 고생하는 한 여인을 딸이라고 불려주는 주님의 사랑이 느껴지지 않는가. 이 대목을 보면서 ‘사랑한다. 내 딸아 내가 너를 잘 아노라, 사랑한다. 내 딸아 내게 축복 더하노라’라고 하는 찬양이 떠오르지 않는가. 그렇다. 주님은 주님을 진정으로 만나기 원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더해 주신다.

이제 그녀의 삶에 온전한 회복과 축복이 임한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그녀가 치유되었다고 선포한다. 이 여인의 가슴 벅찬 순간을 한번 생각해 보라. 평생 숨어 지내다, 이제는 당당하게 서서 완치되었다고 선포하는 그 기쁨을. 그러나 이 여인의 회복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구원을 받은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주님은 “평안히 가라”고 한다. 여기가 이 이야기에서 가장 놀라운 은혜의 대목이다. ‘평안히 가라’는 말은 그냥 평안한 마음으로 가라는 것이 아니다. 원어로는 ’평안을 향해 가라‘라는 뜻이다. 너의 인생이 새로워졌으니, 앞으로 남은 인생을 평안함 속에 살아가라는 축복이다. 평안이 약속된 미래의 삶을 주신 것이다. 더 이상 과거의 아픔, 현재의 고난에 매이지 말고, 주님과 함께 희망의 미래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 어떻게 저에게 이러실 수 있어요’라고 분노할 수 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것밖에 할 수 있는 말이 없어 보일 때도 있다. 자신의 상황이 너무도 절망적일 수 있다. 하지만 상황만 바라보면 절망은 점점 커지고, 희망과 평안은 사라진다. 그러니 제발 어떤 상황에서도 상황을 보지 말라. 오히려 작은 소리로라도 주님을 찾고 부르짖으라. 그때 주님이 당신을 만나고 고치고 두려움으로 다가오는 알지 못하는 미래마저도 평안으로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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