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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 “새해에는…”

<span style=" font: bold 0.8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이수관 목사의 목회의 길에서]</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새해에는…”</span>

이수관 목사 – 휴스턴 서울교회(미주)

“새해에는…”

목자님들의 기도제목을 훑어보던 중에 이런 말이 눈에 띄었습니다. ‘2022년은 살기 좋은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을 읽는데 빙긋이 미소가 지어졌습니다. 왜냐하면 ‘살기 좋은 세상’이라는 말이 우리 나이의 사람들에게는 아주 익숙한 말이면서도 불구하고 상당히 오랜만에 들어보는 구절이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릴 적 70년대 한국은 가난하고 어려웠었고, 그 시절에는 살기 좋은 세상을 그리는 말을 많이 들으며 자랐습니다. 새마을 운동 노래도 후렴구는 그렇게 끝났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살기 좋은 내 나라 우리 힘으로 만드세’ 그러던 한국이 90년대부터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했고, 언제부터인가 한국이 더이상 가난한 나라가 아니던 시점부터는 그 말은 들어보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랬는데 (저희 교회가 있는) 휴스턴에 경기가 어려워지고, 홍수가 나고, 한파가 몰아치고, 급기야는 팬데믹이 휘몰아친 지난 2년 동안 우리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살기 좋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다는 얘기가 나올까 싶었습니다. 그 기도제목을 처음 읽었을 때, ‘글쎄, 그런 살기 좋은 세상이 오기는 할까’라고 읊조렸습니다.

그러다 ‘무엇이 살기 좋은 세상일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우리는 가난하던 70년대에 살기 좋은 세상을 꿈꾸었지만, 편안해지고 돈이 벌리던 시절은 살기가 좋았을까요? 반대로 어려움이 있고 시련이 있었던 그 시절은 나쁘기만 했었던 것인가요? 편안하고 경제가 좋은 것이 우리에게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전부는 또 분명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단단히 붙들고 그분의 날개 밑에 있을 때, 그분이 주시는 분명한 소명을 가지고 그 안에서 목표를 가지고 살 때가 바로 살기 좋은 세상이었습니다.

또한 어려운 가운데서도 나에게 주어진 것에 만족할 줄 알고, 그 기쁨을 누리며 나에게 다가온 시련을 극복하며 살 때, 그때가 살기 좋은 세상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렇다면 살기 좋은 세상은 다만 우리가 누리지 못할 뿐 지금도 주어져 있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올해에도 여전히 우리의 삶 가운데 어려움은 계속될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고 계신다는 것을 든든히 붙잡으시고 미리 염려하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또 어려움 가운데에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행복은 분명히 있기 마련이니, 눈앞에 있는 어려움에 압도되지 않고, 우리에게 있는 행복한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사셨으면 좋겠습니다.

끊임없는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시대의 징조가 있는 법이니 그 메시지를 놓치지 말고, 헛된 것에 소망을 두는 대신, 진정으로 가치 있는 것, 인생의 가치, 하나님의 부르심과 소명에 우선순위를 두고 사는 성도님들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은 오늘 하루를 성실하라고 하셨으니 하나님보다 앞서지 않고, 미리 실망하지 않고, 오늘 하루를 성실하게 사는 성도님들이 되시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맞서 나가다 보면 우리는 더 단단해져 갈 것이고, 우리가 사는 곳에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어 갈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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