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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호프 커뮤니티 난민 선교(1) 난민 선교 시작

 

대표: 김지선, 영어명 Lori Kim

 

조지아주의 애틀란타 근처에 클락스튼이라는 아주 작은 도시가 있습니다. 거기에는 부탄, 이라크, 소말리, 아프가니스탄, 브룬디, 미얀마, 중앙아프리카, 수단, 에리트리아, 에티오피아, 콩고, 시리아 등 세계 각국에서 온 난민들이 살고 있습니다. 약 15년 전부터 조지아 주정부에서 조지아주로 들어온 난민들을 그곳에 정착시키기로 결정한 후, 매해 그곳에 난민 인구가 늘어나자 그곳에 거주하던 주민들이 점점 이사를 나가고 지금은 도시인구의 80%가 난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곳에서 2010년도에 ‘시티호프 커뮤니티'(이하 ‘시티 호프’)라는 비영리 선교단체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토요 영어학습, 방과 후 학교, 가정사역, 중고가게, 스몰그룹 멘토링, 어린이 교회, 청소년 교회 등 여러 사역을 통하여 난민들을 섬기며 복음을 전하는 단체입니다. 매주 평균 백오십여 명의 헌신된 봉사자들과 함께 힌두교와 무슬림 사역에 집중을 하고 있습니다.

난민 선교를 시작하기 전까지 저는 조지아에 15년 정도를 거주했음에도 불구하고 주변 도시에 그렇게 많은 난민들이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2007년도에 근처 에모리 대학에서 공부하던 저의 큰딸이 ‘월드 릴리프’라는 난민 정착 기관에서 여름방학 동안 인턴으로 일하게 되면서 그곳의 난민 상황을 제게 말해주었습니다. 저는 곧 월드 릴리프에 자원봉사자로 등록하여 그 당시 고등학생이던 아들과 막내딸과 함께 아프리카의 ‘부룬디’에서 온 한 가정을 섬기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가정을 매주 토요일 오전에 방문하여 제 아이들이 그 자녀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고 친구가 되어 주었습니다. 아들이 대학에 진학한 후에는 막내딸이 교회 친구들과 함께 그 가정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제가 출석하던 ‘아틀란타한인침례교회’에서 청소년 선교 교육을 담당하면서 교회 청소년들을 난민사역에 참가시켰습니다. 열두 명의 고등학생들을 두 팀으로 나누어 한 팀은 주일 오후 네팔 난민교회의 어린이 주일학교에서 섬겼고, 다른 한 팀은 토요일 난민가정에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쳤습니다.

그렇게 약 2년 정도를 매주 고등학생들과 난민들을 섬겼는데 학생들의 부모님들을 통하여 저희의 사역이 점점 한인사회에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타교회의 학생들과 어른 봉사자들이 사역에 동참하기 시작하였고 2010년도에 정식으로 비영리 단체로 등록하였습니다.

제 아이들과 교회 학생들과의 작은 섬김이 불씨가 되어 향후 십 년간 오늘까지 고등학생부터 대학생, 청년들, 어른들에 이르기까지 수백여 명의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동참하는 선교단체가 될 줄 상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역을 통하여 훗날 수많은 힌두교와 무슬림 아이들, 청소년들을 예수님께 인도하게 되고 그들을 제자양육하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평생 한인사역에만 익숙했던 제가 늦은 나이에 미국 내 이슬람권 확장 방지와 무슬림 사역에 나머지 인생을 바치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클락스튼을 샤리아법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뒤에서 로비활동까지 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도시에서 범죄와 마약과 패싸움을 일삼던 난민 갱단 청소년들을 사역하게 될 줄도 상상하지 못하였습니다. 험악하던 그들이 하나님 안에서 순한 양처럼 변하여 그들과 함께 난민 아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될 줄도 몰랐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짧은 난민 사역기간 동안 하나님의 기도응답과 역사를 그렇게 많이 경험하게 될 줄 몰랐습니다.

난민 사역 초기 당시 클락스튼에서 갈 때마다 일반 미국 거리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는 것이 새로웠습니다. 긴치마에 히잡을 쓴 어린 여자아이들, 간혹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시커먼 천으로 덮고 두 눈만 보이는 여인들, 머리에 흰 모자와 긴치마 같은 옷을 입은 이맘들(무슬림 사역자), 머리에 색동 모자 같은 것을 쓴 연세 드신 동양 남자들, 아기를 등에 업고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가는 미얀마 아줌마들, 한인들이 많이 사는 지역에서 약 40분 정도의 거리에 이렇게 다른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컨퍼런스에서만 듣던 미전도 종족들이 여기에 다 살고 있는 듯하였습니다.

기독교 난민들도 많지만 힌두교와 무슬림들이 밀집하여 사는 지역에서 어떤 식으로 사역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을 하였습니다. 간혹 백인들이 와서 난민들에게 전도지를 돌리며 복음을 전한다는 말을 한 난민 목사님으로부터 들었습니다. 그들을 환영하는 난민보다, 자신들을 개종시키려는 기독교인들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사실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희는 장기적인 사역을 생각하고 전도지보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그들에게 나아가기로 하였습니다.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을 실천하며 관계성을 쌓기로 하였습니다.

성인 봉사자들은 난민 가정들의 필요를 채우며 섬겼고, 고등학생 봉사자들은 계속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주었습니다. 봉사자가 한 난민가정을 평균 일 년 혹은 이 년 동안 섬겼습니다. 관계성을 쌓는 것이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그렇게 섬긴 결과 많은 난민들 사이에 그들을 조건 없이 도와주는 사람들로 알려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많은 자원봉사자들의 섬김으로 인하여 클락스튼 각 아파트 단지마다 저희가 섬긴 가정들이 많았고, 그들은 나중에 저희가 여러 아파트 단지에서 방과 후 학교를 시작할 때 서로 자신들의 응접실을 무료로 내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부터 청년까지 저희에게 한결같이 똑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나도 당신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것이었습니다. 다음은 미얀마에서 온 한 친족 가정의 중학생 딸이 시티호프 방과 후 학교에서 썼던 글입니다.

“저는 어른이 되면 매주 저희 집에 오는 코리안 크리스천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미국에 도착한 후 저와 여동생이 학교에 입고 갈 옷이 없었을 때 그들이 옷을 갖다 주었습니다. 겨울에 날씨가 무척 추웠을 때 그들이 저희에게 이불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제 여동생이 병원에 입원하였을 때 그들이 장난감과 곰인형을 들고 병원에 찾아왔습니다. 저도 어른이 되면 그들과 같이, 가난과 고통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도와주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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