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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간증] 한반도 복음통일의 계절이 긴박히 왔다 (1)

김요셉 목사 (가명)

북한 복음화를 위하는 사명자 (미주)


한반도 복음통일의 계절이 긴박히 왔다 

1. 가라, 가서 복음을 전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베풀고”(마태복음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세례)를 베풀고”(마태복음 28:19)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8) 

나의 신앙의 여정은 미국에서 한국 유학생 신분으로 있을 때 시작되었다. 나는 미국에서 유학 중이던 스물다섯 살 때 예수님을 주님으로 믿고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 구원받고 향후 북미주 이민교회 개척이라는 소명을 받았다. 주님께서 주신 영적 은사와 부르심에 순종하면서 시작되었다. 나의 사명은 주로 한국을 중심으로 남미, 월남, 독일에서 북미주로 이민 온 가족들을 위한 전도와 교회 개척사역이었다. 

1970년 미국회에서 이민법이 변경됨으로 한국인이 미국으로 이민역사에 없던 쓰나미처럼 밀려 들어왔다. 그런 중에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로서 이민자들을 위하는 교회개척이 나의 비전이었고 사명이었다. 불신자로 미국에 정착한 후 영적으로 거듭남을 경험하고 사명을 받았기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어쩌면 당연했다. 받은 소명을 따라 살던 중 갑자기 북한 선교 사역이라는 두 번째 소명을 받았다. 처음에는 이 두 가지 소명이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나에게 왜 이런 마음을 주셨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그저 순종하는 마음으로 세월이 흘렀다. 그러다 문득 첫 번째 소명에서 경험했던 이민자 전도와 두 번째 소명에서 경험하고 있는 탈북민 전도가 깊은 연관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부터 53년 전인 1970년, 미국 북가주 산호세에서 한인 이민자들이 그들만을 위한 교회를 개척 하였고 그것을 계기로 20년 만에 미 전국에 700여 개의 침례교회가 개척됐다. 1957년 교포와 유학생 상대로 김동명 목사님, 안이숙 사모님께서 L.A.에 한인침례교회를 개척한 지 13년 후 이민법이 바뀌어 한인들이 급격히 늘었는데 그들은 한국, 남미, 월남, 서독에서 이민오신 분들이었다. 1990년에는 재미 한인 인구가 100만 명에 이르렀고 북미주에는 한인들을 위한 이민 교회가 우후죽순 개척되었다. 청교도들이 성경과 믿음을 가지고 황무지와 같았던 미국으로 왔던 것처럼 이민이란 제도를 통해 동양에서 미국으로 제2의 부흥의 파도가 몰아친 것이다. 

기독교 교회는 이민 온 한인들을 통해 놀라울 정도로 발전했다. 성경의 진리는 한국인 특유의 민족성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었다. 한인 교회는 복음을 지키고 문화적으로는 개혁을 이루며 폭발적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복음과 기독교 문화가 우리 민족의 순수성과 잘 어우러져 말씀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고 그 말씀의 능력으로 많은 이민자들의 인격이 변화되었다. 한국인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말씀에 적응하는 속도가 다른 민족과 비교할 때 월등했다. 우리 민족의 전통적 정서 “한” 그리고 “정”이 복음과 맞물려 특유의 종교성으로 발현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기독교가 들어온 후 복음으로 변화된 청년들이 인재로 성장하며 개화되기 시작했다. 역사적으로 세계는 복음과 함께 개화가 이루어졌다. 이 역사는 서구 문명에서 시작해 영어권인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등으로 퍼져나갔다. 한국에서는 복음이 1885년 의료선교사 John Heron으로 시작하여 미국에서 조선 반도로 들어왔다. 한국 기독교는 이제 전환기를 넘어 폭발적인 부흥을 거쳐 성숙기에 접어들었다. 하나님이 주신 축복으로 대한민국은 세계가 놀랄만한 민족 복음화를 이루었다. 대한민국은 현재 영적 위세를 미국 다음 2번째 국가로 선교사를 열방으로 파송하는 복음 강국의 위치에 있다. 한경직 목사님, 김준곤 목사님 등 많은 영적 지도자의 눈물과 외침이 이런 성장에 귀한 밑거름이 되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북한에도 복음의 바람이 불어야 한다.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2천 5백여 만 명의 북한 사람들의 귀에 주님의 음성이 들어가야 한다. 그래야만 잘못된 사상과 핍박으로 점철된 영혼들이 주님의 보혈로 거듭날 수 있다. 

말씀으로 변화된 북한 주민들은 남한의 성도들과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어 시대적 사명을 함께 감당할 파트너가 될 것이다. 남한의 사역자와 깨어난 북한의 사역자가 파트너가 되어 함께할 때 미래 세계에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사명을 온전히 감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복음과 함께 개화되며 전향된 한국의 젊은이들에겐 그동안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용기와 자신감이 충만한 긍정적 삶이 자리를 잡았고, 진리의 말씀을 통해 인간의 참된 권리와 존엄성이 무엇인지를 배웠다. 한국 교회는 기독교의 진리를 사회에 전함으로 한국의 건국과 번영, 민주주의 확립을 도왔다. 하지만 지금은 안타깝게도 한국의 신앙인들이 신세대 문화에 탐닉하여 영성이 낙후되고, 세속화되고 있는 듯하다. 이런 난관을 헤쳐 나가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은 북한의 신앙인들을 복음을 전할 일꾼으로 세우고 사용하실 거로 생각한다. 북한은 여건만 갖추어진다면 말씀을 중심으로 지구촌 아세아 지역에서 폭발적인 전도 폭발의 주역이 될 영적 탄약고이다. 초대교회의 부흥을 예수님의 제자들이 이끌었고, 한국의 부흥을 위해 희생한 많은 믿음의 지도자들이 있었듯이 미래에는 북한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영적 지도자들 가운데 많은 탈북민 크리스천 지도자들이 탄생할 것이라고 믿는다. 

나는 조부모님을 통해 역사를 배우며 애국심을 키웠다. 나는 1938년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전쟁과 살육이 난무하던 시대에 태어났다. 일제강점기, 대한독립 그리고 6‧25 전쟁…. 이 모든 것을 경험하며 고난의 기억을 지울 수 없는 청년기를 한국에서 보냈다. 지금의 세대는 상상조차 하지 못할 격동의 시대를 경험한 인생이다. 나는 북한과는 아무런 인연이 없는 서울에서 태어난 대한민국 사람으로 대학원생이던 20대 중반에 미국으로 유학을 갔다. 미국에서의 삶은 처음 경험하는 서구적 문화의 낯섦과 영어권 생활에서 비롯된 갈등과 불안의 연속이었다. 한동안 여러 문제로 힘들었던 나는 생존에 대한 불안한 마음을 안고서 기적적으로 예수님을 만났다. 주님은 내가 처한 모든 문제를 말씀과 기도로 해결해 주셨다. 그뿐만 아니라 복음을 통해 나를 거듭나게 하셨다. 나는 주님을 만난 후 새사람이 되었고 내 삶은 한 번도 생각하지 못한 새로운 방향으로 새롭게 펼쳐졌다. 

나는 평안북도에서 남한을 거쳐 미국으로 이주한 크리스천 목사님과 장로님에게 영적 양육을 받았다. 함께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제함으로 나의 신앙의 뿌리는 자연스럽게 한반도 6‧25 사변 전 북한에서 온 신앙인들의 영향을 받았다. 내가 맡은 북한 선교라는 사명의 뿌리는 신앙을 키워주신 선배님들, 교회 목사님들 그리고 내가 신학교에서 가르친 사역자들이 지속적으로 여기에 동참하였고 원조를 해줬다. 

처가는 평양이 배경이다. 내 아내의 선조는 평양의 초대 교인들로 미국에 120년 전에 이민을 오신 분들이다. 아내의 조부모는 미국 선교사의 전도로 크리스천이 된 후 노동자들과 함께 두남매 4인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왔다. 이 부부의 증손녀인 아내를 만나 57년 동안 인생을 함께 살고 있다. 우리 부부는 영어권에서 사역을 시작한 뒤에는 일상생활에서 주로 영어를 사용할 정도로 영어에 익숙해졌다. 그 덕분에 나는 영어로 미국에서 학위를 받았고 강의와 논문도 영어로 하는 것이 더 편하게 되었다. 이처럼 한국말보다 영어가 편할 정도로 오랜 시간 영어권에서 전문인으로 머물렀지만, 한시도 조국을 잊은 적이 없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과 잊지 않고 지켜온 조국의 역사는 내 인생의 긍지이다. 끊을 수 없는 연관성이 나라와 동포를 사랑하는 마음과 복음 사이에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다음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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