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Select Page

[정태회 목사의 삶, 안목, 리더십]
팀워크: (2) 책임 묻기(accountability)

<span style=" font: bold 0.8em Nanum Gothic, serif ; color: green;">[정태회 목사의 삶, 안목, 리더십]</span> </br><span style=" font: bold 0.5em Nanum Gothic, serif ; color: fuchsia;">팀워크: (2) 책임 묻기(accountability)</span>

정태회 목사 – D.C.M.i 대표(미주)

팀워크: (2) 책임 묻기(accountability)

한국어로 번역하기 가장 어려운 영어 단어 중 하나는 아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이다. 네이버 교육학 용어 사전은 accountability를 책무성(責務性)이라는 한자어로 번역하고 있다. 둘 다 “책임”으로 번역되는 accountability와 responsibility의 차이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대해 네이버 지식iN의 어느 독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responsibility는 단순한 ‘책임’을 의미하나 accountability는 책임을 인정하고 책임을 지기까지 하는 것을 말한다.”

지난 호에 필자는 팀워크의 가장 필수적인 요소를 <위임>이라고 말했다. 이번 호에 필자는 위임을 성공적으로 만드는 리더십 요소를 말하고자 한다. 그것은 어카운터빌리티(accountability)이다. 과업을 위임한 팀 리더의 편에서 보면 <책임 묻기>이고, 과업을 위임받은 팀 멤버의 편에서 보면 <책임지기>이다. 리더가 팀 멤버에게 과업을 위임한 이후 과업의 성취 여부를 확인하여 상을 주거나 책임을 묻지 않는다면 팀워크를 통해 이루어질 일은 아무것도 없다.

2018년 12월 발행 비즈니스 저널에는 <The Most Expensive Mistake Leaders Can Make>라는 제목으로 경종을 울리는 기사가 실렸다. 기업의 직원들을 향해 “매니저가 당신에게 과업을 맡긴 이후 임무 달성 여부를 확인합니까?”라는 갤럽 조사의 질문에 채 40%도 되지 않는 직원만이 “Yes”라고 대답했다는 기사이다. 그렇다면 60% 이상의 리더는 자신이 업무를 맡긴 사람이 임무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임무의 달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어쩌면 리더가 팀 멤버에게 맡긴 과업의 목표가 측정할 수 없는 애매한 것이기 때문에 확인하려 하지 조차 않을 수 있다. 두말할 나위 없이 측정 불가능한 목표는 좋은 목표가 아니다. 애매한 과녁을 명중시킬 화살은 없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과녁이 없으면 아무 데나 활을 쏘아도 백발백중이다. 주적(主敵)이 없어진 한국군에게 성폭력과 성추행이 주적이 되었다는 뉴스는 결코 우연이 아니다.

나아가 임무 달성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 리더라면 담당자가 과업을 수행하는 동안 그를 코치해 주었을 리 만무하다. 전문 인력이 개발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떤 리더는 담당자가 임무를 완수해 놓지 않았을 경우 그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는 불쾌한 대립적 상황을 피하기 위해 임무 달성의 여부를 확인하지 않는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간에 리더가 자신이 위임한 업무의 달성 여부를 확인하여 담당자에게 어카운터빌리티를 요구하지 않는 것은 팀워크를 망치는 치명적인 요인이라고 University of Dayton 리더십센터는 지적한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이라고 했던가? 자신이 가장 가장 총애했던 장군 마속이 임무를 완수하지 못했을 때 제갈량은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베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팀워크는 없다. 환상적인 팀 워크를 원하는 리더에게 절대적으로 요구되는 리더십 자질은 위임한 이후 책임을 묻는 용기이다. 임무를 달성하지 못한 사람에 대한 적절한 조치도, 임무를 달성한 사람에 대한 칭찬이나 보상도 생략된 채, 모든 것이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 넘어간다면 팀워크는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오래전 어느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존 맥스웰이 했던 말을 잊을 수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조직 중 교회처럼 리더십을 이해하지 못한 기관은 없습니다. 교인에게 맡겼던 일이 완수되어도 목회자는 회중 앞에서 교인의 노고를 칭찬하고 상을 주는 대신 이렇게 말하고 끝납니다. ‘주님을 찬양합니다. 주님께 감사합니다.’ 임무를 맡은 교인이 자신의 과업을 성취하지 않아도 목회자는 항상 그의 등을 두드리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님, 힘내십시오. 괜찮습니다. 우리 모두가 바쁘게 살고 있지 않습니까? 그 일을 해 낼 시간이 없었던 것 충분히 이해합니다.’” 매사가 이런 식이라면 목회자와 성도 간에 팀워크가 이루어질 리 없다. 그 결과 교회는 언제나 비효율적인 연약한 조직으로 남아있을 뿐이다.

리더는 달란트의 비유에서 배워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활용하여 열매를 남긴 청지기에게 주님은 상을 주셨다. 자신에게 주어진 달란트를 땅에 파묻고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한 청지기를 주님은 벌하셨다. 리더십 용어를 사용한다면 <주님은 자신의 일을 위임하신 후 결과에 대해 책임을 물으셨다>. 최후의 심판 역시 청지기의 삶을 인간에게 위임한 창조자가 역사의 종말 이후 인간에게 궁극적으로 책임을 묻는 것이 아닌가? 최후의 심판이 없다면 인류의 삶은 혼란과 방종으로 점철될 것이다. 위임과 책임 묻기는 일란성쌍둥이이다. 위임하지 않으면 팀워크를 통한 환상적 결과는 없다. 위임했다면 어카운터빌리티를 요구한다. 책임을 요구하려면 용기가 필요하다. 환상적인 팀워크(위임과 책임 묻기)는 용기 없는 리더가 감당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미주침례신문 앱 다운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