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시의 위기

 

오래전 콘스탄틴 게오르규가 쓴 “25시”라는 소설이 있었습니다. 25시란 하루의 24시간이 끝난 시간으로써 더 이상의 희망도 구원도 불가능한 최후의 시간을 뜻 합니다. 게오르규는 2차 대전 직후 자신이 겪었던 포로 생활을 바탕으로 이 소설을 썼다고 합니다만, 그는 인류의 현실을 잠수함 속의 토끼로 설명을 했습니다.

옛날에는 잠수함에 토끼를 몇 마리씩 넣어 다녔습니다. 요즈음처럼 계기가 발달하지 못했기에 잠수정 속의 산소량을 측정하기 위해서입니다. 토끼는 폐가 약하기 때문에 산소가 부족하면 인간보다 3시간 전에 죽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토끼가 헐떡거리면 잠수함은 곧바로 수면 위로 올라와 산소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만일 토끼가 죽은 지 3시간이 다 되어가는데도 그냥 물속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그 잠수함에 탄 사람들은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어리석은 선택입니다. 구원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오늘날 25시의 절박성을 인식하지 못한 채 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 땅에서 일어나고 있는 징조들은 이미 위험 수위를 통과하고 있는데도 그것을 인식하지 못한 채 안일한 잠을 자는 이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지하고 무책임한 모습입니다.

혹시 우리는 거기에 해당되지 않을까요? 붕괴하고 무너지는 이 땅의 현실을 보면서도 자신만의 아성을 고집한다면 그것은 위험한 선택입니다. 참된 시대적 사명과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외면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 크리스천들이 어둔 시대의 빛이 되고 구원의 나팔이 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니, 무너진 성벽 사이에 들어가 붕괴를 막아서는 중보자가 될 것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런 우리의 역할을 좀 더 간절함으로 할 순 없을까요? 의인 열 명을 구하였던 아브라함의 기도가 절실한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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