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갑질

 

요즘 한국에서 많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말 중의 하나가 바로 “갑질 한다.”이다. 정확한 어원이나 뜻은 알 수 없으나 아마 갑, 을, 병, 정 등 순서를 정할 때 사용하는 단어들의 가장 앞에 나오는 단어가 갑이니, 상대적으로 힘이나 권력이 센 사람‘갑(甲)’이 그보다 못한 사람‘을(乙)’에게 횡포나 부당한 짓을 저지른다는 뜻이리라.

몇 년 전에 모 항공사 회장의 딸인 젊은 부사장이 항공기를 불법 회항 하도록 지시한 사건이 있었다. 그녀는 승무원과 사무장에게 호통을 치고 무릎을 꿇도록 하기도 해 국민의 공분을 샀다. 그런데 최근에는 육군대장이라는 높은 자리에 있는 군인과 그의 부인이 공관병에게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갑질을 해서 비난을 받고 있다. 과도한 일을 시킨 것도 모자라 호출용 전자팔찌까지 착용시켰다니 국방의 의무를 다하려고 사병(士兵)으로 입대한 젊은이를 사병(私兵)이나 노예로 착각한 듯하다. 뿐만 아니라 한국에는 온갖 종류의 갑질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프랜차이즈 본사가 영업점을 상대로 하는 여러 형태의 부당한 행위, 거래처가 납품업체에게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서 행하는 압박, 교수가 논물을 제출해야하는 학생에게 가하는 비상식적인 행동, 소비자가 전화상담원에게 가하는 언어와 인격적인 폭력, 인허가권을 가진 공무원이 기업에 가하는 은근한 요구 등 그 사례는 끝이 없을 정도이다. 오죽하면 한 때 ‘아니꼬우면 출세하라’는 말이 유행을 했을까.

그런데 문제는 수많은 갑질을 자행했음에도 불구하고 갑질을 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갑질을 했는지에 대한 자각을 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한 혹 나중에 자신이 갑질을 했다는 인식했을지라도 그러한 행동을 정당화 하거나 돈으로 해결을 하려고 드는 경우가 많은데 있는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사랑과 봉사와 섬김의 장이어야 할 교회에서도 이러한 잘못된 갑질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목사는 성도에게 대접을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은연중에 갖고 있는 것, 교인들이 관리집사를 제 집의 하인처럼 부리며 심부름을 시키는 것, 장로나 교회의 직분자들이 젊은 사람들을 막 대하면서 ‘자식 같아서 그랬다’고 자신의 행동을 합리화 하는 것, 일부 여성도들이 사모를 우습게 여기면서 대하는 것, 목사한테는 고분고분하면서 전도사나 사무원은 만만하게 보는 것 등 교회 내에서의 갑질도 심각한 현상이다. 이러한 현상들로 인해 교회가 본연의 할 일을 하지 못하고 세간의 지탄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주님으로 섬기고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종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자녀이기에 서로 형제자매임을 고백하는 자들이다. 그리므로 혹 세상에서는 갑질이 있을 수 있으나 교회에서는 서로 자신을 낮추고 남을 높게 여기는 문화를 만들어 나가야 할 것이다. 또한 태어나면서부터 평생 갖게 되는 나이의 권력을 이용해서 나이가 어린 사람은 존댓말을 써야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은 반말을 함으로써 은연중에 드러나는 갑-을 관계의 문화도 교회에서는 개선해야 한다. 교회에서는 어지간히 친해도 상호 존대를 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을 것이다. 어떤 형태의 갑질도 용납하지 않는 교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갈 때 세상에 빛을 비추는 사명을 감당할 수 있으리라 본다.

총회비를 낸다고, 선교비를 보낸다고, 총회나 선교회사무실에서 일에 약간 실수가 있으면 다짜고짜 목소리부터 높이는 갑질도 성숙한 목회자들이라면 시정을 해야 한다. 실수를 바로잡아주고 수고에 대한 격려를 하는 것이 성숙한 신앙인의 자세이다.

링컨은 ‘진정으로 어떤 사람의 본래 사람됨을 시험해 보려거든 그 사람에게 권력을 쥐어줘 보라(If you want to test a man’s character, give him power.)’고 했다. 작든 크든 권력을 가지면 남 앞에서 허세를 부리기 마련이다. 그러니 칼을 쥐면 휘둘러보고 싶다는 말이 있는 것 아니겠는가. 이번에 문제가 된 그 장군과 부인의 무릎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성경책을 보면서 사도바울의 권면의 말씀이 생각난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2:3). 이 묘한 상반됨에서 무엇을 취할 것인가가 그 사람의 인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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